바르셀로나 주민들은 왜? 관광버스 타이어 펑크냈나

2017.08.02 17:25 입력 2017.08.02 22:32 수정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내 한 벽면에 ‘여행객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관광 반대 문구가 쓰여 있다. 트위터(@martaballesta)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내 한 벽면에 ‘여행객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관광 반대 문구가 쓰여 있다. 트위터(@martaballesta)

복면을 쓴 남성 4명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캄프 누 축구경기장 인근을 지나던 시티투어 버스를 강제로 멈춰 세웠다. 이들 중 한 명은 다짜고짜 타이어를 펑크냈고, 또 다른 이는 버스 앞 유리창에 스프레이로 이렇게 썼다.

‘관광이 주민을 죽인다.’

현지 일간 엘파이스는 복면 남성들이 급진 좌파 민중연합후보당(CUP) 청년 당원들이었다고 지난 1일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승객들이 당시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았다고 생각해 겁에 질렸고, 복면을 쓴 남성들이 총 대신 스프레이를 꺼내자 비로소 안도했다고 전했다.

유명 관광지인 바르셀로나의 지역 정치인들은 CUP 당원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을 소수 급진세력의 일탈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바르셀로나 주민들 사이에 ‘반관광’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어서다. 주민들은 10% 안팎의 높은 실업률보다 급증하는 관광객 수를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시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19%가 ‘너무 많은 관광객’을 ‘가장 걱정스럽다’고 답했다. 2009년 이후 연례 조사 때마다 ‘실업’이 문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올해 처음 역전된 것이다.

인구 160만명인 바르셀로나에는 해마다 전 세계 관광객 3000만명이 찾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까지만 해도 시 경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2%가 되지 않았으나 이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지역 경제의 12%, 일자리의 15%가 관광에서 창출된다.

그러나 그 수익이 주민들이 원하는 만큼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프랜차이즈 레스토랑들 때문에 가족들이 경영해오던 소규모 식당은 문을 닫았다. 관광객 대상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정작 주민들은 살 집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지난 8년간 시내 중심가 인구는 11% 감소했다. 핵심 관광지인 고딕 지구는 같은 기간 주민 45%가 줄었다. 200년 역사의 라보케리아 시장은 밀려드는 관광객 탓에 주민들은 제대로 물건도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2015년 바르셀로나시는 주말에 15명 이상의 그룹관광객이 시장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했을 정도다.

바르셀로나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같은 세계 주요 관광도시들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지난 3일 베네치아 주민 2000여명은 “관광객이 너무 많다”며 시위를 벌였다. 바르셀로나처럼 관광객 수가 급증하면서 주민들의 주거 비용 등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이 주거비용을 견디지 못해 떠나면서 베네치아 인구는 40년 전의 절반 수준인 5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베네치아를 찾는 하루 평균 관광객 수보다 적다.

지난달 초 베네치아시는 시내 주요 역사관광지역에 더 이상 숙박시설을 새로 짓지 못하도록 했다. 암스테르담은 올해 관광 홍보예산을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였다. 바르셀로나는 허가 없이 홍보를 했다는 이유로 숙박공유서비스 업체 에어비엔비와 홈어웨이에 벌금 60만유로(약 8억원)를 각각 부과했다.

시 당국들의 노력에도 불구, 문제는 지역 경제에서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졌다는 것이다. 관광객 수를 조절하려는 정책에 여행사와 거대 호텔기업들은 격렬하게 반발한다. 택시 운전사, 영세 기념품 가게 주인들도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베네치아의 한 주민은 현지 언론 더로칼에 “관광은 베네치아를 죽인다. 하지만 베네치아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관광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주요 관광도시들이 직면한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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