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론' '다양성론'으로 박성진 정면 돌파키로 한 청와대

2017.09.01 11:54 입력 2017.09.01 15:37 수정

· 임종석 비서실장 주재 회의서 “뉴라이트 역사관 지적은 과도한 문제제기…청문회까지 간다” 결론

청와대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뉴라이트 역사관 문제제기를 이른바 ‘소시민론’과 ‘국무위원 구성의 다양성론’으로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1일 아침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현안점검회의에서 조국 민정수석으로부터 역사관 문제제기에 대한 재검증 보고를 받은 뒤 토론을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청와대 “국무위원 구성에도 다양성 필요”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안점검회의에서 격의 없는 토론이 있었다”며 “역사관에 대한 문제제기는 과도한 문제제기인 것 같다는 것이 회의에 참석자 다수의 의견이었고, 청와대는 청문회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는 기존 입장에서 전혀 바뀐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후보자 본인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생활보수’일 뿐이고,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여·야,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소신을 밝힌 것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 않다는 게 주된 의견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박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한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국무위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역사관을 갖고 있으면 저희도 환영하겠지만, 일반적인 공대 출신으로서 그 일에만 전념해온 분들이 사실 건국절 관련 문제를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소벤처기업부가 교육부처럼 보수와 진보의 문제를 다루지도 않는 데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하는 데 보수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국무위원 내에서도 다양성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논리는 박 후보자가 평소 역사의식을 별로 고민해본 적이 없는 소시민 또는 공학도였을 뿐이므로, 기능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박 후보자의 보수적 견해가 내각의 다양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박 후보자는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장관 후보로 내정되기 전에 어떠한 정치적, 이념적인 성향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면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건국과 정부수립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 쪽에서는 저에게 소시민으로 살때 그런 흔적들이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했고 저도 용기 내 이 자리에 섰다”고도 했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뉴라이트 사관 논란 등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뉴라이트 사관 논란 등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영혼없는 공무원 안된다더니…

하지만 청와대와 박 후보자의 해명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뉴라이트 활동을 했던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초청해 세미나에 초청한 점, 1948년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고 이승만 정부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독재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점 등을 볼 때 “정치적, 이념적 성향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박 후보자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심용환 역사 N 교육연구소 소장은 “도대체 지난 2년간 그 뜨거웠던 국정교과서를 비롯한 역사논쟁을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인가”라며 “이승만·박정희 사관을 아는데 뉴라이트를 모르고, 정부수립도 구분하지 못하는데 경제사가 이영훈을 불렀다는 얘기를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벤처 창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정책 전반을 관할하며 국무회의에 국무위원으로 참석하는 중앙부처의 장관이 단순한 전문 기능인에 불과한 것이냐는 지적도 제기될 수 있다.

국무위원은 대통령 및 국무총리와 더불어 합의제인 정부 최고 정책 심의기관인 국무회의에서 각종 안건의 심의 의결권을 갖는다. 해당 부처의 전문적인 영역을 다룰 뿐만 아니라 국정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킨 목적은 단순히 스타트업 기업의 지원과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라는 가치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와 뉴라이트 역사관 등에서 보여지듯 우익적 성향이 뚜렷한 박 후보자가 그 일을 하는 데 적임자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중소기업벤처부 장관=기능인’ 논리는 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시작하며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면 안된다”며 공무원들에게 근본적 반성을 촉구한 것과도 배치된다. 그러다 보니 ‘국무위원 구성의 다양성’ 주장은 청와대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박 후보자 인선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정책을 연구하는 한 교수는 “모든 공직자가 역사 전문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청와대가 장관급 후보자에 대해 ‘상식 수준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연구만 해온 공학자이니까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공학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주노동자와 성소수자에 대해서 사용하지 않는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장관급 인사에서 창조과학과 뉴라이트를 포용하는 데 쓰이는 것을 문재인 정부에서 보는 것이 많이 힘들고 괴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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