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된 평등, 유예할 수 없는 차별금지법 제정

2017.10.08 20:08 입력 2017.10.08 20:10 수정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 지난 9월5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 앞에 장애 아동 부모들은 무릎 꿇고 호소했다. 침통한 이 장면은 장애인의 교육권이 확보되기 위한 현실적인 과정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지역에서 장애인 공교육을 담당할 특수학교는 기피시설이 되었다. 예정 부지에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지난 총선 공약으로 내건 김성태 국회의원은 반대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장애인에 대한 오랜 편견과 혐오는 노골적인 차별로 이어져 관련 시설 설립 예정지가 되면 반대는 당연한 수순처럼 전개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헌법 제11조 ‘교육기본법’, 제4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특수학교 설립 반대 행위는 헌법의 평등정신에 위배’된다고 표명했다. 이 결정이 즉시 갈등을 해결해주고, 잘못한 이를 골라내거나 차별을 일소하진 않는다. 그러나 장애인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약속과 국가의 책임이 무엇인지 확인시켜 준다.

[NGO 발언대]유예된 평등, 유예할 수 없는 차별금지법 제정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불평등하게 살아간다. 차별이 장애인, 이주민, 여성, 10대, 성소수자, 빈민 등 일부 소수자만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한 차별이 발생하는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동정과 시혜의 문제로 접근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 모난 돌로 찍히거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눈치 보며 부당함을 말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 거다. 학교, 일터, 집, 관공서, 거리, 카페, 영화관, 화장실…. 차별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나의 삶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왜 나는 차별받고 있다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까? 언제부턴가 차별받는 경험은 실패나 무능, 운명, 성격의 문제로 개인이 겪어내야 할 과제로 남겨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인권의 문제로, 불평등에 대한 저항으로 고민은 이동해야 한다. 그 진전을 위한 시작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경험을 법에 근거해 말할 수 있는 토대이다. 차별과 모욕 앞에서 주저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법이다. 그러니 차별금지법은 모두를 위한 법이다.

‘차별은 안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은 단계와 합의가 필요하다’라는 말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유예시키는 논리가 얼핏 합리적으로 들린다. 어떤 이는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기다리면 나중에 해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미래에 현재를 빼앗길 수 없다. 불평등한 일상을 감내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다. ‘동성애 찬성법, 일부만을 위한 법’이라는 주장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이 동성애를 희생양 삼는 동시에 차별의 문제를 찬반 문제로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차별 경험을 개별로 고립시키고, 차별해도 되는 사유와 그렇지 않은 사유를 구분하며 차별을 위계화한다.

국가가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국가의 책임으로 인정하고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혐오와 차별을 방관하고 평등실현의 책무를 외면하는 국회와 정부에 민주주의와 다양한 인권을 보장하는 삶을 기대할 수 없다. 나라다운 나라, 촛불민주주의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와 20대 국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