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처세술

2017.10.09 21:15 입력 2017.10.09 21:16 수정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황대권의 흙과 문명]국가와 처세술

가족 또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것은 다른 가족이나 공동체와 시비가 붙었을 때이다. 합리적 이성주의에 의하면 제3자의 입장에서 잘못한 쪽을 나무라는 것이 정상이다. 이럴 경우 잘못한 쪽이 상대방이면 별문제 없으나 우리 쪽이면 아주 곤란해진다. 잘못한 우리 쪽을 편들자니 양심이 찔리고 상대방을 편들자니 우리 쪽의 원성을 산다. 부부나 친구 사이처럼 범위가 좁아지면 어디 도망갈 데도 없다. 처세술에는 무조건 우리 쪽을 편들고 난 다음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으면 차분히 잘잘못을 일러주는 것으로 나와 있다. 성격이 냉정하거나 판관 기질이 있는 사람은 이를 잘 못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처세술대로 한다고 해서 만사가 늘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 상대방이 완강하게 나올 경우 큰 창피를 당할 수 있다. 이런저런 경우를 다 겪고 보면 처세술이란 것이 특정한 조건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황대권의 흙과 문명]국가와 처세술

개인이나 가족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설사 잘못 대처하여 낭패를 보아도 그 피해가 개인이나 가족 주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국가 사이에 벌어져서 잘못되면 국민 모두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핵미사일을 두고 벌이는 실랑이가 그렇다. 사소한 개인 간 다툼에도 나름 역사와 배경이 있거늘 국가 사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북·미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하면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무조건 미국 편을 든다. 어느 정도냐 하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마저 ‘빨갱이’로 매도될 지경이다. 동족상잔의 트라우마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사회적 또는 심리적 피해가 너무도 크다. 사회 전체가 어느 한쪽을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규정해놓고 선택을 강요하다보니 제대로 된 외교전략이나 사회정책을 수립할 수가 없다. ‘사드 배치’ 사건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배치되는 것이라 미국의 가상 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예상됨에도 한국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부했다가는 든든한 후견자인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음과 동시에 흑백논리에 길들여져 있는 자국민으로부터도 외면당할 것이 빤히 보인다. 덕분에 한국은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변변히 항의도 못하는 가운데 미국으로부터는 고가의 새로운 무기들을 들여와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문제도 외교적 딜레마 못지않게 복잡하고 어렵다. ‘적폐청산’을 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국정원의 치졸한 행위들은 극단적 이분법 논리를 고수하려는 자들의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국민들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국정원 뺨치는 정보검색 능력을 가지고 있는 디지털시대의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짓들을 한다. 돈을 주고 관제데모를 조직하고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가짜정보를 제공하여 인터넷 공간을 흑백논리의 각축장으로 만든다.

디지털 인프라로 보면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사회심리학적으로는 70년 전 좌우익 대결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적어도 기성세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젊은 세대의 발언을 검색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일방적인 바람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세대인 이들은 ‘팩트’라는 정보를 앞세워 이전 세대보다 더욱 심한 흑백논리를 구사하고 있다. 예컨대 ‘세계 평화의 수호자’ 또는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과 위상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그런 미국의 보호를 받는 것은 선량한 시민이 정의로운 경찰의 보호를 받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한국이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사대주의’이지만 미국의 뜻에 따르는 것은 ‘주권 행사’로 본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과 미국이 똑같은 핵무기를 갖고 으르렁대고 있는데 북한 것은 ‘악마의 독화살’로, 미국 것은 ‘근엄한 아버지가 드는 회초리’ 정도로 보고 있다. 트라우마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내면화 또는 사회화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교주의 발언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이는 종교적 광신과 무척 닮았다. 절대 진리 앞에서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 판단은 힘을 쓸 수가 없다. 진실로 무섭고 두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이 민족과 땅을 하루아침에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핵전쟁일지라도 절대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 이런 경우 다 지나고 난 뒤에 “실은 당신이 잘못했지만 사랑하는 당신이기에 편들어주었어. 다음부턴 이런 곤란한 상황 만들지 않았으면 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처세술은 개인의 사회화 과정을 도와주기 위한 일종의 충고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충고이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 많은 처세술의 목록을 훑어보면 대체로 인간의 감성을 고려한 충고가 많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을 쓸데없이 건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위가 국가 정도로 커지면 거꾸로 감성보다는 이성에 기초한 판단이 더 유효하다. 정치인이건 일반인이건 대중의 정서나 통념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거대 집단의 감성이 통제할 수 없는 광기로 이어진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고집 세고 다혈질인 두 국가 지도자가 핏대를 올릴수록 우리는 더욱 이성적이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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