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께, 그리고 촛불시민들께

2017.10.15 10:59 입력 2017.10.15 21:05 수정

10월28일이면 촛불 1주년입니다. 1주년을 맞는 마음이 어떠신지요? 촛불을 들었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편지를 써 봅니다.

[하승수의 틈]문재인 대통령께, 그리고 촛불시민들께

먼저 문재인 대통령께 꼭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시점에서 세 가지를 꼭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나를 도와준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국민만 생각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문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은 어려울 때를 같이 해 준 측근들도 아니고 지금의 참모들도 아닙니다. 촛불시민들입니다.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아실 분이지만, 그동안 있었던 몇몇 인사 실패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벤트보다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에 집중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진솔하고 선한 모습 덕분에 지난 9년 동안 말도 안 되는 권력의 행태에 상처 났던 국민들의 마음은 많이 치유됐습니다. 이제는 위기에 처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과 정치시스템 개혁에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특히 대통령께서 공약하신 선거제도 개혁과 국민참여 개헌을 이번에는 이뤄내야 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었던 이유는 정치시스템에 하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표심을 왜곡시키고, 정치다양성을 억압하며 참정권을 제약하는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개헌도 밀실개헌이 아니라 국민들이 참여하는 최초의 개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대통령께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주십시오. 이것만 돼도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적폐청산과 함께 개혁 협치를 해야 합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추진하는 모든 개혁을 무산시키기 위한 정치기획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일부와의 통합은 그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그쪽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국회에서 120석 이상만 확보하면 국회선진화법 체제하에서 모든 개혁입법을 좌초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기획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의 공통관심사인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로 개혁 협치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양심적이고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인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개인의 정치적 미래나 내가 속한 당의 정치적 이익이 중요한 때가 아닙니다. 지금 시스템 개혁을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정치는 다시 ‘퇴행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을 떠나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협력하고, 시민사회와도 손을 잡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촛불을 들었던 동료시민들에게 제안드립니다. 누구에게 기대하는 것과 의존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문 대통령이나 양심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모든 개혁은 국회 앞에서 멈춰있습니다. 정치개혁, 재벌개혁, 검찰개혁 모두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는 짧습니다. 임기 후반부에는 개혁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집권 초기 1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개혁의 첫걸음은 국회를 바꾸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모든 개혁을 가로막고 특권만 누리려는 국회의원들을 그대로 두고 무슨 변화를 바랄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 11일 뉴스타파는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국민세금을 지원받아서 ‘베끼기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안상수(인천 중·동·옹진·강화), 홍문표(충남 예산·홍성), 박덕흠(충북 옥천·영동·괴산·보은), 이종배(충북 충주), 이헌승(부산진을) 의원이 1차로 지목됐습니다. 정부부처 보도자료나 타 기관 연구보고서를 통째로 베껴서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원들이 공직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는 ‘표절은 도둑질’이라고 호통을 쳤다니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보고서를 낸다면 0점을 받을 것이고, 연구자가 이렇게 했다면 학계에서 매장될 것이며, 공직후보자가 이렇게 했다면 사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엉터리로 의정활동을 하고 국민세금을 도둑질해도, 지역구 관리만 잘하면 다음번에도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이런 의원들을 퇴출시키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광화문 촛불을 여의도 촛불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제는 정권교체를 넘어서서 정치교체로 가야 합니다. 지금의 낡고 썩은 정치를 바꿔야 앞으로 우리 삶이 편안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1월11일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정치개혁과 국민주도 개헌을 요구하는 주권자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촛불이 일어났던 광화문에서 모여 주권자들의 의지를 다지고, 그 이후에는 여의도로 가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차가운 바닥에서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나라, 정치가 내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내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한 번 더 촛불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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