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찾은 장 피에르 레오,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

2017.10.15 14:52

“<400번의 구타> 오디션은 5분이었어요. 그때 나는 어린아이였지만 본능적으로 ‘이 5분이 내 인생을 결정하는 5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열네살 소년 장 피에르 레오의 본능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는 1959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이후 소년은 트뤼포, 장 뤼크 고다르, 자크 리베트, 장 외스타슈 같은 누벨바그 거장들과 함께 작업하며 60여년간 대체불가능한 배우로서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지난 12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은 수많은 배우들 중 장 피에르 레오는 평범하게 보였다. 올해 일흔넷이 된 노배우가 외모로 다른 배우들과 겨루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대를 영화사 전체로 옮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부산을 찾은 배우들 중 영화사적 중요성에서 그보다 더 빛나는 이름을 새겨놓은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벨바그가 영화사의 신화라면, 레오는 그 누벨바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지난 13일 오후 9시30분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한국 영화팬 100여명이 그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고다르 감독의 <작은 독립영화사의 흥망성쇠>(1985) 상영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누벨바그와 나’를 통해서다. 진행을 맡은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자 그의 필모그래피 자체가 영화사가 되는 배우가 있다. 장 피에르 레오가 바로 그런 배우”라며 “오늘 이 자리에 오는 동안 그를 만난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레오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프랑스 배우 장 피에르 레오가 지난 13일 밤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누벨바그와 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프랑스 배우 장 피에르 레오가 지난 13일 밤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누벨바그와 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프랑스 배우 장 피에르 레오가 지난 13일 밤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누벨바그와 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프랑스 배우 장 피에르 레오가 지난 13일 밤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누벨바그와 나’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작은 독립영화사의 흥망성쇠>(1985).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작은 독립영화사의 흥망성쇠>(1985).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작은 독립영화사의 흥망성쇠>는 제작비 부족으로 곤란을 겪는 독립영화 제작자와 독립영화 감독, 제작자의 아내 등 세 인물을 중심으로 1980년대 TV시대를 맞아 영화가 처한 곤경을 고다르 특유의 실험적 스타일로 풀어나간 작품이다. 트뤼포가 죽고 난 1년 뒤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 대해 레오는 “고다르가 트뤼포에게 보내는 헌사와 같다”고 말했다. 고다르는 영화에 직접 출연해 극중 영화 감독 가스파르(장 피에르 레오)에게 “모든 게 퇴보하고 있다. 영화도 역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레오는 “영화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고다르는 진정한 천재”라고 말했다. 레오는 <400번의 구타>를 시작으로 트뤼포와 ‘앙트완 드와넬’ 연작 5편을 찍은 후 고다르와도 9편의 영화를 찍었다.

<400번의 구타>를 찍는 동안 트뤼포는 연기 경험이라고는 전무했던 레오에게 별다른 연기 지도를 하지 않았다.

“오디션을 보고 며칠 후 파리의 한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이게 마지막으로 고친 것’이라며 시나리오를 주더군요. 트뤼포는 시나리오만 줬을 뿐 촬영 내내 연기 지도라는 걸 거의 하지 않았어요. <400번의 구타>에서 트뤼포가 제게 연기 지도를 한 건 딱 한번입니다. ‘왜 학교에 빠졌느냐’는 교사의 질문에 ‘우리 엄마가 죽었어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에서였지요. 트뤼포는 제게 그 대사를 마치 ‘다 꺼져버려’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로 연기하라고 말했습니다.”

레오의 영화 경력에서 포스트 누벨바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장 외스타슈 감독의 <엄마와 창녀>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트뤼포, 고다르, 자크 리베트, 에리크 로메르 등 누벨바그 감독들의 근거지와 같았던 영화 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만났다. “당시 리베트가 편집장이었는데 저는 외스타슈, 리베트 등과 함께 몰려 다니면서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봤어요. 최고의 친구들이었죠. 그런데 어느날 외스타슈가 방에 틀어박혀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고는 <엄마와 창녀>라는 제목의 아주 두꺼운 시나리오를 들고 왔습니다.”

레오는 당시 제작비가 부족해 매 장면마다 한 번만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테이크에 5~6분이 걸렸죠. 필름을 아끼기 위해 딱 한 번만 찍었습니다. 대사를 틀리면 안 되니까 밤을 새면서 3개월 동안 대사를 외웠어요. 나중에 영화를 본 짐 자무시 감독이 제게 ‘애드리브를 정말 잘 하더라’고 해서 아주 속상했습니다(웃음).”

이날 레오는 한국 영화팬들을 만나 즐거운 표정이었지만, 영화팬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그는 “질의응답을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말했다. 정성일 평론가의 요청으로 누벨바그 감독들과의 작업을 회고한 게 전부였다.

영화팬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해 박수를 받았다. “코엔 형제가 ‘오스카상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컬트 영화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컬트 영화가 두 개나 있거든요. <400번의 구타>, 그리고 <엄마와 창녀>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날인 14일 오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직접 작성한 간단한 인사말을 읽었을 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질문은 받지 않았다. 그는 인사말 말미에 “한국의 홍상수 감독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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