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감정노동자 ‘업무 중단권’, 배달앱 사업주도 라이더 보호 의무…28년만에 전면 개정되는 산업안전보건법

2018.02.09 15:25 입력 2018.02.09 16:44 수정

콜센터 감정노동자 ‘업무 중단권’, 배달앱 사업주도 라이더 보호 의무…28년만에 전면 개정되는 산업안전보건법

앞으로 배달앱 사업주들은 주문을 위탁하는 ‘라이더’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고객의 폭언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원들은 전화를 끊을 권리를 갖는다. 기업들이 ‘영업 비밀’이라는 핑계로 노동자들에게 위험한 화학물질 성분을 숨기는 일도 원천 차단된다.

9일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산안법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것은 1990년 이후 28년만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감소대책’의 일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산재 사망자 수를 2020년까지 절반 가까이 줄이는 게 목표다.

먼저 개정 산안법은 보호하려는 대상을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바꿨다.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개인사업자이지만 일감을 주는 쪽에 종속돼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을 모두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택배기사, 학습지교사 같은 ‘특수고용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앞으로 사업주는 업무를 위탁한 사람들에게 안전보건교육을 해야 한다. 최근 들어 빠르게 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배달앱 회사들은 위탁계약을 한 오토바이 배달원들에게 보호구를 지급하는 등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

산업재해에서 원청의 책임도 대폭 늘렸다. 위험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쪽의 산재예방 책임을 늘려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수은·납·카드뮴 제련 등 고(高)유해·위험작업은 도급을 아예 금지했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는 가맹점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고, 가맹본부가 공급하는 설비의 안전·보건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원청 처벌규정도 강화했다. 특히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하청업체 사업주뿐만 아니라 원청 사업주도 1년~7년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원청 사업주는 사람이 숨지는 사고가 나도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그쳐, 하청업체만 책임을 뒤집어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노동자 스스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권리도 명시했다. 산재가 벌어질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노동자는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게 됐다. 사업주는 노동자가 위험을 보고하면 작업을 멈춰야 한다. 현장에서 대피한 노동자를 해고하는 등 불리한 조치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내려진다. 콜센터 상담원같은 ‘감정노동자’들도 고객의 폭언으로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이 우려되면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전환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정당한 업무중단 요구를 거부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화학물질 성분을 숨기는 일도 금지된다. 개정안은 기업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할 의무를 새로 만들었다. 산안법에 따라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작업장에는 이 자료를 비치하게 돼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멋대로 화학물질 성분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고, 삼성반도체 직업병 사건처럼 노동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유해물질에 중독되는 경우가 있었다. 또 화학제품을 거래하는 기업들끼리만 자료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정부가 유해물질 현황을 알기 어려웠다. 앞으로는 화학물질 성분과 함유량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기업은 노동부 장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비공개 승인을 받은 화학물질도 위험성과 유해성을 알 수 있도록 대체명칭과 대체함유량을 적어야 한다.

노동부는 다음달 21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을 갖고 공청회 등을 통해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올해 상반기 중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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