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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성장의 열쇠건 실체 없는 유령이건…피할 수 없다면 통찰하라

2018.02.23 21:32 입력 2018.02.23 21:44 수정

이정모의 ‘4차 산업혁명’

[세상을 읽는 책갈피](2)성장의 열쇠건 실체 없는 유령이건…피할 수 없다면 통찰하라

‘창조’라는 말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게 정상적인 사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창조라는 말이 붙으면 ‘사이비’를 떠올리게 되었다. 창조과학과 창조경제가 주범이다. 사이비들이 좋은 단어를 차지하고 오용함으로써 그 단어에서는 어떠한 울림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혁명’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단어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세상을 뒤집고 싶은 사람에게는 희망의 단어지만 지킬 게 많은 사람에게는 음울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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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어떤가? 소설가 장강명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가 ‘심오롭다’고 표현했다. 심오한 것 같지만 별 뜻은 없다는 야유다. 역사학자 김기봉은 “제4차 산업혁명은 아직은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등장한 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4차 산업혁명은 또 한 번의 압축성장을 향한 나침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잘살아보세’의 21세기 버전인 것이다.

옳든 그르든, 좋든 싫든 한국 사회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섰다. 싫다고 외면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과 체계가 들어서기도 전에 알파고의 세례를 받았고 촛불로 세상을 바꾼 한국 시민들에게 제4차 산업혁명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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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널리 퍼뜨린 사람은 클라우스 슈밥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의 속도와 범위, 깊이는 국가가 발전해나가는 방법과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에 대해, 심지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기 위해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새로운 현재)을 썼다. 클라우스 슈밥은 21세기의 시작과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면서 모바일 인터넷,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을 핵심요소 기술로 지칭했다.

책의 1부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정의와 선도 기술, 그리고 영향력을 다루며 2부에서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룬다. 여기에는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인공지능,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공유경제, 3D프린팅, 신경기술 같은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어느 정도 익숙한 것과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 뒤섞여 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항목에서 저자는 2025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블록체인 기술에 저장될 것이라는 데 전문가 58%가 동의했다고 밝힌다. 2016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냥 흘려 읽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켜야 할 현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커다란 불안감이 생겼다. 웃을 일이 아니다. 아나키스트적인 발상을 하는 기술자들과 전 세계 정부 사이에 흥미로운 각축이 예상된다.

제4차 산업혁명에 관한 단 한 권의 책을 읽겠다면 당연히 이 책이다. 제목과 표지만 보면 무거운 책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마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말로 풀어놓은 것처럼 일목요연하다. 따로 노트할 일도 없다. 몇 시간만 집중하면 다 읽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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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이 간단한 예수님 말씀에 대한 해설은 차고 넘친다. 해석도 다 다르다. 원래 단순한 것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간단한 말에 대한 해설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더 자세하고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곳에 비추어서 설명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민화는 제4차 산업혁명을 한국화했다. 벤처협회를 설립하고 코스닥 설립을 주도한 바 있는 이민화는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KCERN)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인류사적인 혁명인 동시에 한국의 기회”라고 말한다.

그렇다. 전 세계에서 유독 대한민국에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가 바로 ‘한국의 기회’라는 이것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잘 짚어내고 해결책을 제시한 책이다.

이민화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을 O2O(Online to Offline)라고 본다. 가상과 현실이 융합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다. 만물 인터넷이 오프라인 세상의 정보를 온라인의 클라우드로 끌어올려 빅데이터를 만들면 인공지능이 이를 처리하여 다시 오프라인 세상의 최적화를 제안한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데이터를 모으는 융합과정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을 최적화하는 과정으로 O2O 모델이 구성된다. 우버가 자동차와 연결되고 에어비앤비는 집들을 연결하는 식이다. O2O 융합은 여섯 개의 디지털 기술, 즉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위성위치시스템(GPS),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어러블 컴퓨터가 여섯 개의 아날로그 기술, 즉 서비스 디자인, 플랫폼, 3D프린팅, 증강 및 가상현실, 게임화, 블록체인과 핀테크를 최적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창조경제가 주름잡던 시대에 쓴 글을 모은 것이라 군데군데 불편한 구석이 많기는 하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분배혁명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았다는 미덕이 그 불편함을 덮고도 남는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의 근원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는데 미래형 기업을 만드는 지식과 해법은 무엇인지 궁금해 할 독자를 위한 책이 필요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페이퍼로드)가 여기에 안성맞춤이다. 일곱 명의 전문가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프린팅, 로봇, 빅데이터, 스마트 공장이라고 하는 여섯 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과 그들의 전략을 소개한다. 각 기술이 어떻게 돈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의 목적지는 스마트 공장이다. 그런데 스마트 공장이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산업기술평가원은 ‘제품의 기획, 설계, 생산, 즉 제조, 공정, 유통, 판매 등 전 과정을 정보통신기술(ICT)로 통합하여 최소비용과 최소시간으로 고객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정의했다. 이해가 되시는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책의 저자들은 스마트 공장을 ‘공급되는 소재와 설비, 생산되는 제품이 스마트하여 어디가 아픈지 어느 정도로 심한지를 말할 수 있고, 사람의 개입 없이 서로 소통하여,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자동으로 생산하는 똑똑한 공장’이라고 설명한다. 여전히 아쉽지만 어쨌든 이해는 되었다. 사람의 일자리가 확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확실히 보여준다. 저자들은 스마트 공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디지털화, 연결화, 스마트화로 요약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는 탁상공론을 펼치는 게 아니라 실제 산업현장을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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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나온 책 가운데 한 권을 자식에게 읽히라고 한다면 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를 고를 것이다. 유인원에서 인류의 미래에 이르는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를 하나의 줄기로 엮어 가벼운 필체로 풀어낸 글솜씨와 원문에 걸맞은 빼어난 번역이 어우러진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미래를 다루는 마지막 몇 챕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학자의 한계일 것이다. 과연 제4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빚어진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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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동아시아)은 여기에 대한 대답을 준다. 인공지능이 열어갈 인류와 생명의 미래에 대해 통찰을 주는 책이다. 우주물리학자인 테그마크는 2014년 ‘생명의 미래 연구소’를 설립한 후 인공지능이 도래할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제목에서 말하는 라이프 3.0은 무엇일까? 테그마크는 자연의 섭리대로 하드웨어 진화로 등장한 인류(1.0)는 다른 생명과 달리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전달하는 문명을 발전시켰으며(2.0) 마침내 이제 인공지능을 통해 하드웨어도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체(3.0)로의 발전을 코앞에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정리하고 버전 넘버를 붙여준 것은 고맙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하는 것. 이 책의 주제는 ‘라이프 3.0 시대는 언제 나타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이다. 책은 ‘언제?’와 ‘무엇?’을 묻는 수십 가지의 질문에 대해 차근차근 대답한다.

6장 ‘우리의 우주적인 재능: 다음 수십억 년과 그 너머’는 저자가 우주론 물리학자임을 상기시킨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물리학은 정말 아름다운 학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넓고 깊은 지식을 주면서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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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 보기 운동이나 천 삽 뜨고 허리 펴기 운동으로 우리가 잘살 수 있을까? 북한도 이 단계는 지났다. 우리 역시 새마을운동이나 ‘잘살아보세’ 같은 슬로건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는 없다. 그런데 혹시 우리나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은 국민들 정신만 빼놓고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창조경제 같은 어떤 슬로건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이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학은 원래 의심과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서울대학교 홍성욱 교수는 김소영, 김우재, 김태호, 남궁석, 홍기빈이라는 다섯 명의 젊은 학자와 함께 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휴머니스트)에서 우리는 왜 4차 산업혁명에 열광하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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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만 말하자면 미래 전망은 밝지 않다. 지난해 12월, 책의 서문을 쓰는 사이에 기초과학 연구에 배정된 연구비 800억원이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초 체력 없이 장거리를 뛰겠다는 속셈이 드러났다. 각각 400억원씩 삭감한 기획재정부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은 아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것이다. 그리고 입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당사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북바이북)이 먼저 나왔다. 앞의 책보다는 조금 더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쓴 책이다. 기술철학 전공자인 손화철은 기계파괴주의 또는 기술혐오주의라는 딱지가 붙은 ‘러다이트운동’을 재평가한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제2의 스티브 잡스와 데미스 허사비스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떻게 통제, 견인, 선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라고 주장한다. 4차 산업혁명이 ‘한 사람이 백만명을 먹여 살려야 할 세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한 명이 되기 위한 노력보다 그런 미래를 막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부록으로 실린 ‘4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신문 칼럼을 분석한 글인데 다양한 입장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만 잘 활용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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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디에 쓸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4차 산업혁명 지도사 자격증이 있는 나라다. 4차 산업혁명 전공 과정이 있는 대학도 있다. 이번 정부가 끝나기 전에 4차 산업혁명 학과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4차 산업혁명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 제4차 산업혁명은 누구나 관심을 갖고 정체를 알아야 하는 대상이 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막막한 대다수의 시민을 위해 시민을 위한 다양한 교양 과학서를 집필한 박재용이 나섰다.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뿌리와이파리)는 기술사의 시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신석기 혁명부터 산업혁명 그리고 이후에 쭉 이어지는 다양한 혁신의 사례들이 자연과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본다.

박재용은 자신에게 내재된 러다이트운동의 시각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혁명과 혁신은 인간에게 봉사하기보다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면서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혁신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와 대안이 필요한가를 설파한다. 나는 박재용에게 동의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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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자기의 미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세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자식이 10년 뒤 전혀 새로운 사회에 진출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창의력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도대체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교사 출신의 사회활동가 박미자는 그것은 바로 공감 능력, 회복 탄력성 그리고 예술 감수성이라고 <부모라면 지금 꼭 해야 하는 미래교육>(위즈덤하우스)에서 알려준다. 이것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부모가 먼저 변해야 생기는 능력이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자녀를 둔 부모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우리가 여태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시대다. 거기에 대한 정보를 얻고 통찰력을 발휘하려면 일단 아무 책이라도 잡고 읽어보자. 그냥 당하지는 말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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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과 저술을 종횡무진하며 대중에게 과학·기술을 쉽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거쳐 2017년 5월부터 서울시립과학관 초대 관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본대학교 화학과에서 곤충과 식물의 커뮤니케이션 연구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등 다수의 과학 교양서를 집필했고 <인간 이력서> <매드 사이언스 북>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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