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한 마리 값 아끼자고 경비원들 내몰 순 없어요”

2019.01.16 21:23 입력 2019.01.16 21:35 수정

대전 둔산동 아파트 호소문

입주자대표 “절반 감원”에

주민 650여명 반대서명 동참

이미 두 차례 투표로 막기도

“치킨 한 마리 값 아끼자고 경비원들 내몰 순 없어요”

“우리는 가족에게 비용과 효율성만을 따지지 않습니다. 치킨 한 마리 값 아끼려고 가족 같은 분들을 내몰 순 없습니다.”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아파트에 최근 이런 내용의 호소문(사진)이 나붙었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올해 경비원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하자 인력 감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직접 게시한 글이다. 16일 이 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달 경비원 감축 계획을 의결해 주민들에게 공고했다. 현재 17개 동에 각각 1곳씩 있는 경비초소를 2개 동에 1개씩으로 축소하고 34명의 경비인력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이에 따라 2월1일부터 순차적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경비원들을 재고용하지 않겠다고 안내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관리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게 주된 이유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경비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면 가구당 월 1만5000원 안팎의 관리비가 절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인력 감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치킨 한 번 덜 시켜먹고 경비원과 함께 사는 길을 택하겠다”며 주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아파트에 서명용지와 함께 게시한 글을 통해 “우리에게 정리해고의 위협이 닥치면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할 것이고, 지금 경비원들이 그런 심정일 것”이라며 “힘들수록 가족 같은 분들과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감축 계획을 주민투표로 막아내자”고 호소했다. 지난 11일 게시된 주민투표 서명용지에는 나흘 만에 650여명이 서명했다.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 감축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과 2017년에도 인력 감축이 추진됐지만 주민투표에서 부결돼 무산됐다. 2016년 투표 때는 전체 2000여가구 중 949가구가 참여해 643가구가 감축에 반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원 감축에 대해) 입주민 동의는 받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 내용을 주민들에게 함께 안내했다. 주민 정모씨(43)는 “과거 두 번이나 주민투표에서 부결된 사안을 입주민 동의 없이 결정한 것은 투표를 하면 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주민 생활과 직결된 문제는 번거롭더라도 주민 의사를 반영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미화와 교통·주차 관리, 택배 수령 등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경비원이 감축되면 주민들은 약간의 비용을 절감하는 대신 더 큰 불편을 겪을 것”이라며 “최저임금이 문제라면 오를 때마다 경비원을 줄일 거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입주자대표회장은 “답변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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