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간접고용의 눈물

‘모범 사용자’ 된다더니…공공부문 ‘자회사 비정규직’ 더 늘렸다

2019.01.17 21:14 입력 2019.01.17 21:24 수정

정부 정규직 전환정책 ‘함정’

2018년 철도의날 기념식이 열린 지난해 6월28일 서울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외주·자회사 노동자의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공공기관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기만적이라고 비판한다.  강윤중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2018년 철도의날 기념식이 열린 지난해 6월28일 서울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외주·자회사 노동자의 직접고용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공공기관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은 기만적이라고 비판한다. 강윤중 기자

‘자회사 고용’ 가이드라인
공공 간접고용률 7.8%
민간부문의 2배 육박

택배·대리운전기사 등
간접고용 더 쪼개진 형태
특수고용 노동자도 급증
정확한 규모 파악도 안돼
‘노동자’ 정의 새로 내려야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과 2016년 구의역의 김군은 간접고용 노동자여서 죽었다. 간접고용엔 ‘위험의 외주화’에 이어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2014년 1월 경향신문의 ‘간접고용의 눈물’ 시리즈에서 다룬 노동자들의 처지는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서 위험한 일을 떠맡는다. 차별과 착취도 여전하거나 더 나빠졌다는 게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에서 확인됐다.

실태조사는 새로운 형태의 간접고용 문제도 짚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시도되는 ‘자회사 상용직’, 배달앱 등을 통해 노동력을 중개하는 특수고용 형태의 ‘플랫폼 노동자’ 같은 고용이 등장했다. 이런 고용 방식은 노동시장을 더 균열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공공기관의 자회사 설립과 특수고용 노동은 간접고용의 결함과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간접고용 때문에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세분화되는 노동 현장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 공공부문은 ‘모범 사용자’인가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며 “정부가 가장 ‘모범적인 사용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의욕적으로 시행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앞서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방안으로 내세웠다. 이 가이드라인은 현장에서 실행됐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9월 기준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의 상시적 업무 담당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인원은 5만9470명이다. 이 중 자회사 상용직 방식으로 전환된 이들이 3만2514명(54.7%)으로 절반이 넘는다. 공공기관의 간접고용 노동자 수는 2003년 약 3만9000명에서 2017년 17만명으로 5배가량 늘었다. 공공부문에서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도 같은 기간 3.1%에서 7.8%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민간부문의 간접고용 비율(4.5%)보다 높은 수치다. 공공기관 파견용역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의 35.1%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실태조사에서 “대선공약인 상시적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에 따라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다. 그러나 고용주만 바꾸고 여전히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사용하겠다는 정책에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다”며 “자회사 방식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을 겪은 공공기관은 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 파편화된 노동자 늘어

간접고용의 또 다른 문제는 ‘플랫폼 노동자’ 등 더 복잡하게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택배 기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화물차 기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는 간접고용 노동자와 유사하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대부분 업체와 직접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위탁·개인 사업자 신분으로 일한다. 간접고용에서 분절된 형태로 나온 게 특수고용 노동자인 셈이다. 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실태조사에서 “생산 방식 변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기존의 고용관계와 다른 고용관계나, 전통적인 노동자와는 다른 형태의 종속성을 지니는 노동자 유형이 확산한다”며 “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서 외양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속성을 함께 지니기 때문에 전통적 유형의 노동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법적 보호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1인 자영업자 형태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사실상 관리하는 회사는 이들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노동자로 인정받으려면 일반적으로 사용·조직·경제 종속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사용 종속성은 통상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가리킨다. 조직 종속성은 사용 업체 사업에 꼭 필요한 업무를 하는지를 통해 판단한다. 예컨대 방송작가는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지만 방송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 조직 종속성에 따르면 방송사에 소속된 노동자가 된다. 경제 종속성은 누구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지, 노동자 수입의 원천은 어디인지 등 노동자의 경제적 종속관계를 포괄적으로 판단한 척도를 말한다.

경제·조직 종속성에 따라 노동자를 정의하게 되면 사내하청 등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뿐만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도 직접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광의의 노동자 개념을 전제로 하여 노동자성 판단지표를 사용 종속성뿐만 아니라 경제 종속성과 조직 종속성 등 세 가지 유형의 종속성을 모두 적용하여 어느 하나에라도 해당되면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자 개념을 포괄적으로 적용할 것을 권고한다. ILO 기본 협약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제98호)은 고용관계의 전제 없이 노동3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국 정부는 이 협약을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간접고용이 더 쪼개진 형태가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이라고 볼 수 있다”며 “간접고용에서의 원·하청 관계가 더 쪼개져 플랫폼 노동자와 사용자, 더 나아가서 고객과 직접 연결·계약되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은 “노동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지 않을 경우 사용자인 업체가 위장된 1인 자영업자를 내세우는 등 간접고용 문제는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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