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동의, 성별정정에 필수 아니다”···법원, 결정문에 첫 명시

2019.07.04 18:22 입력 2019.07.04 19:30 수정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부모 동의가 성별정정 요건에 필수가 아니라는 법원의 첫 명시적 판단이 나왔다. 그간 재판부는 부모 동의를 얻지 못한 일부에게 암묵적으로 성별정정을 허가해왔지만 부모 동의가 성별정정에 필수가 아니라는 내용을 결정문에 명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4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에 따르면 인천가정법원은 1일 부모 동의서 제출 없이 법적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길 원하는 트랜스젠더 여성 ㄱ씨(20대 후반)에 대해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부모 동의가 성별정정 허가여부 판단에 필수가 아니다”라고 결정문에 결정 이유를 적었다.

ㄱ씨는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여성으로서의 성별 정체성을 갖고 현재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성전환 수술 등 의료적 조치도 받는 등 법원의 성별정정허가를 받기 위한 요건을 충족했다. 다만 대법원 예규가 요구하는 서류 중 부모동의서를 갖추지 못했다. ㄱ씨 부모가 종교적 이유로 ㄱ씨와 갈등을 겪으면서 양측 간 관계가 단절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은 지난해 12월 부모 동의서를 제출하지 못한 ㄱ씨의 성별정정 허가 신청에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ㄱ씨는 항고했고 2심인 인천가정법원이 1심 결정을 취소한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 동의 여부가 성별정정 허가에 필수 요건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결정문에 적시했다. 이미 ㄱ씨가 오랜 기간 여성의 주체성과 자아를 가지고 생활해왔으며 자신의 상태에 관해 고민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부모가 성별정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ㄱ씨의 성별정정을 불허할 직접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봤다.

희망을만드는법 측은 “이번 결정은 부모 동의 여부가 성별정정에 필수가 아님을 구체적이며 명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 2006년 제정된 대법원 예규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성별정정 허가 신청 시 부모 동의서를 첨부하도록 규정하지만 부모 동의서 제출은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에서 성별정정을 위한 요건으로 설시한 내용이 아님에도 예규에 구체적 근거 없이 삽입된 것”이라 했다.

또한 “비교법적으로 봐도 성년의 성별정정에 부모의 동의를 요구하는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부모의 동의가 필수가 아니라는 본 결정의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 예규는 법률과 같은 효력이 없다. 하지만 많은 법원들이 그간 대법원 예규에 근거해 성별정정 허가신청 시 부모 동의서를 요구해왔다. 이에 많은 성소수자들은 성별정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희망을만드는법이 2018년 트랜스젠더 70명을 대상으로 한 성별정정 경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5.7%가 부모 동의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희망을만드는법 측은 “이번 결정이 하나의 사례로 그치지 않기 위해 법원의 성별정정 허가 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며 “트랜스젠더가 처한 구체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불필요한 서류를 요구하는 현행 대법원 예규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성별정정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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