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안위, 규제기관으로 거듭나야

2017.09.21 20:43 입력 2017.09.21 20:55 수정
김혜정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

[기고]원안위, 규제기관으로 거듭나야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원자력 안전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통령 직속 장관급 위원회로 출범했던 원안위가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 산하 차관급 위원회로 격하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중소벤처기업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내각 개편이 마무리되어 가지만 원안위는 여전히 옛 구조 그대로이다. 탈원전 논쟁 속에 원안위라는 규제부서가 실종되어버린 느낌마저 든다.

원안위는 원자력발전소와 방사능폐기물 등 원자력 이용에 관련된 모든 안전 규제를 책임지는 합의제 행정부처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립기구로 발족되었다. 그러나 규제기관으로 독립된 지 6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위상과 역할에 걸맞은 부처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년간 ‘이명박근혜’ 정권이 원자력 진흥에 앞장서온 인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규제기관을 원전산업의 보조기구처럼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원자력공학자나 원자력 친화적인 인사들로 대거 구성된 원안위는 원전 안전보다 원전산업계와 정권의 요구에 순응해왔다. 그 결과 원안위 위원 전체 9명 중 위원장을 포함, 정부·여당이 7명을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된 박근혜 정부에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신고리 3·4호기 운영허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다수결로 결정되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원안위의 규제권한을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 4월 원안위는 미래부 산하 원자력연구원이 몇 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방사능폐기물의 무단폐기와 우수관 배출, 고철매각, 방사능 감시기 조작 등 수십건에 이르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해 과징금과 과태료를 부과하는 행정처분을 했다. 그런데 원자력연구원은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반성은커녕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원안위 결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자력연구원의 불복 사태가 보여주듯이 건설 중인 원전을 포함하면 29기의 원전과 원자력 이용시설의 안전을 책임지는 규제기관의 위상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세월 원자력 진흥을 국가 목표로 추진해오는 동안 규제기능이 원전산업의 보조적 수단으로 치부되었던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활성단층지대에 원전이 가동되는 세계 최고 원전밀집 국가이다. 늙어가는 원전도 늘어나고 있다. 24기 원전 중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이 11기에 이른다. 활성단층지대 원전의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잇달아 확인된 격납건물 콘크리트 내부를 둘러싸고 있는 플레이트 철판 부식과 격납건물 콘크리트 구멍 발생, 증기발생기 내 망치 발견 등의 문제가 20년 이상 아무도 모른 채 방치되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원전 확대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원전 해체와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분방안에 대해서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신규 원전의 건설과 수명연장 금지 말고도 세계 6위 원자력 국가인 한국이 해결해야 할 안전 문제는 차고 넘친다.

안전불감증의 만연과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다는 원자력계의 인식과 규제시스템 아래에서 원전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 핵심은 국민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다. 원자력 안전 규제기관의 강화와 원전 안전성 확보가 없는 탈원전 에너지 정책은 공허하다. 새 정부가 원자력계와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밀려 원자력 규제기관 위상 강화를 포기한다면 ‘정권은 바뀌어도 원자력계는 영원하다’라는 원자력계의 정설이 사실임을 입증하게 된다.

시민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시대에는 원자력계의 정설이 통하지 않아야 에너지 전환과 원자력 안전의 초석을 세울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원자력 안전을 챙기겠다는 약속이 실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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