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사고현장 “캄캄한 복도 헤엄쳐… 환한 빛 보고 살았다 생각”

2014.04.16 22:05 입력 2014.04.17 01:06 수정
진도 | 박용근·강현석 기자

“순서 정해놓고 기다리다 갑자기 물 차오르자 서로 나가려고 몸싸움”

“현장 도착 때 90도 기울어… 배 안 사람들 창문으로 구조 장면 바라만 봐”

“오전 8시40분쯤 두어 번 배가 크게 기울어졌는데 10분쯤 지나자 갑자기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움직이면 배가 더 기울어지니 그대로 기다리라는 방송을 믿고 대기했는데 자판기가 넘어지고 몸이 쏠리면서 이리저리 뒹굴고 부딪쳤어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렸습니다.”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안산 단원고 김승래군(18)은 “물이 찬 복도는 정전이 돼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장애물이 많아 이리저리 피해 물속을 비집고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에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고 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배가 기울자 교사들은 물이 차오르면 출입구로 빠져나가 탈출하자고 얘기했다. 학생들은 침착하게 순서까지 정해놓고 기다렸지만 서서히 차오르던 물이 갑자기 불어올랐다.

박준혁군은 “고창식, 남윤철 선생님 두 분이 침착해야 한다고 소리쳐 밖으로 나갈 순서까지 정해놓고 기다렸다”며 “그러나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서 순간적으로 서로 빠져나가려고 잡아당기고 밀어내면서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이어 “캄캄한 복도를 헤엄쳐 환한 빛을 만났을 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아비규환’ 사고현장 “캄캄한 복도 헤엄쳐… 환한 빛 보고 살았다 생각” 이미지 크게 보기

침몰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밖에 있던 화물이 선실 등으로 쏟아지고 물은 선실 쪽으로 차올랐다.

사고 당시 갑판에 있었던 승객 박모씨(57)는 “암초에 부딪치는 소리가 난 뒤에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배에 있던 화물이 쏟아지고 밖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깥쪽으로 몰려들었다”면서 “불과 수십분 만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옆으로 배가 기울어졌을 때는 선실 대부분이 물에 잠겨버렸다”고 기억했다. 박씨는 “갑판에 있다가 배가 기울어지길래 난간을 붙잡고 버티고 있다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구조됐다. 선실 3층 아래는 식당, 매점, 오락실이 있는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후미에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유환군(18)은 “일반인들은 외부에 나가 있어 탈출하는 데 용이했을 텐데 학생들은 대부분 선실에서 있다가 지옥 같은 상황을 맞았다”고 했다. 김군은 “안내방송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믿고 기다렸는데 결과적으로는 물이 찰 때까지 기다린 꼴이 돼버렸다”면서 “이러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닥에 엎드려 발로 지탱한 뒤 30분 만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 직후 인근 섬에 살고 있는 어민들은 어선을 몰고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여객선은 빠르게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문자메시지를 받은 조도와 관매도, 소마·대마도 등 인근 섬에 살고 있는 어민들은 어선을 몰고 긴급히 사고 현장으로 갔다.

어민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어민 김현오씨(47)는 “20분을 달려 현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반쯤 물에 잠긴 채 출입구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자신의 1.1t짜리 어선에 8명을 태워 인근에 대기 중이던 진도군 행정선 ‘아리랑호’와 ‘707 급수선’으로 옮겼다. 다음에는 17명을 태웠다. 김씨는 “배가 거의 물에 잠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태웠다”고 했다.

김씨가 사람들을 태운 직후 여객선은 완전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김씨는 “사람들이 배 안에서 유리창으로 구조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출입구가 몇 개 안돼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면서 “마음은 더 구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현장에 도착한 지 20여분 만에 큰 여객선이 완전히 침몰했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이라고 밝힌 허웅씨(53)는 “첨단장비를 동원해 구조에 나섰다고 하는데 배만 오고 구조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면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만 했지 구명보트를 띄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늑장대응이 참사를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더보기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