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반라시위한 페맨女 “벗지 않으면 관심 안 가지니까”

2014.07.24 15:36 입력 2014.07.25 19:15 수정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100일째를 사흘 앞둔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한 20대 여성이 상반신을 탈의하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1인 토플리스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한 소설가이며 행위예술가인 송아영씨(24). 그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두고 보여주는 정치권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송씨는 국제 여성인권 단체인‘페맨’(FEMEN) 한국지부 대표이다. 페맨은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들이 최초로 결성한 여성운동단체다. 이 단체가 처음부터 토플리스 시위를 벌였던 건 아니다. 2009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 독립절 시위 때 처음으로 토플리스 시위를 벌였고, 이후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반라 시위 벌인 한국 페맨 대표 송아영씨. 김정근기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반라 시위 벌인 한국 페맨 대표 송아영씨. 김정근기자

‘그대들이 이 곳에 오신 이유는 분명 가슴 벅차게 하고 싶은, 터져 나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페맨 공식카페에 내걸린 문구다. 한국페멘의 창립자인 송씨를 지난 23일 오후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만나 가슴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송씨는 토플리스 시위를 택한 것에 대해 “페맨이 시작된 우크라이나 본부 회원들도 간절해서 벗은 것이다. 세월호 문제 역시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라면서 “벗지 않으면 관심을 안 가지니까,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시위를 벌인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인권단체 ‘페멘(FEMEN)’ 한국지부를 설립한 행위예술가 송아영씨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토플리스(topless.반라)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세계인권단체 ‘페멘(FEMEN)’ 한국지부를 설립한 행위예술가 송아영씨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토플리스(topless.반라)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송씨는 지난 5월 ‘한국 페멘’을 창립하고 카페와 공식블로그를 개설했다. 그는 “시위방식을 두고 논란이 있지만, 페멘 활동가들이 반나체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때문에 피켓을 든 평범한 1인 시위 보다 이목을 집중시킬수 있고 나아가 관심도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공미술 작업을 하다 페맨의 시위방식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대학 전공은 극작이지만 시각미술에 매력을 느끼고 4대강 반대 등 공공미술 전시 작업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시각미술은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필요한 이야기를 바로 표현할 수 있다”며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식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초 이틀동안 광화문과 대한문에서 여고생 교복을 입고 1인 시위를 했다. 한쪽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고 ‘대한민국은 안전하다’(KOREA IS SAFE)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서 있었지만 별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는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내가 죽었을 수도 있는 사고라는 생각에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국가가 나를 구해줄까, 우리 가족이 미개인이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6·4지방선거 이후 나아질줄 알았는데 아무 변화도 없어 반라시위를 결심했다”며 “비폭력적인 ‘유쾌한 저항’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유쾌한 저항’은 몇초만에 끝났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하라’는 구호는 물론이고 준비해 간 종이손팻말을 미처 펼쳐보지도 못했다. 송씨는 경찰들에 의해 현장에서 연행됐고‘과다노출’로 범칙금 5만원을 물었다.

세계인권단체 ‘페멘(FEMEN)’ 한국지부를 설립한 행위예술가 송아영씨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토플리스(topless.반라)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김기남 기자 k

세계인권단체 ‘페멘(FEMEN)’ 한국지부를 설립한 행위예술가 송아영씨가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토플리스(topless.반라)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김기남 기자 k

가족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놀라셨다. 하지만 나중에는‘다음에는 다이어트 좀 하고 하라’며 이해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계간지 <한국문학예술> 단편소설 신인상 공모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송씨는 다음달 자신이 대본을 쓰고 배우로도 출연하는 연극 공연도 준비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페멘의 토플리스 시위에 대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만의 방식에 대해서는 고민 안했나.

“성소수자 인권운동 여성운동도 처음에는 다 비판 받았다. 시기상조라는 말은 의미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이걸 했을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처음이지만 세월호 문제라서 오히려 묻혔다고 생각한다. 시위방식보다 세월호를 이야기하니까 막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

“사전에 시위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 안했다. 토플리스 시위에 대한 사진기사 보도가 나간 이후 아버지가 전화하셨다. 아버지는 보수적인 분이시다. 아버지가 ‘너 괜찮냐’고 먼저 물어보시더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벗는건 아니다고 하시면서 경찰서 오시겠다 하셨는데 그때는 이미 풀려났을 때여서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후에‘다이어트 좀 하고 하라’면서 절 이해해 주셨다. 엄마는 아직까지 모르신다.”

-페맨의 시위방식을 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비폭력적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나름 ‘유쾌한 저항방식’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나는 명랑하게 살고 싶다. 세상이 무겁기 때문에. 살아가려면 유쾌한게 필요하다. 누가 보면 경박하다고 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가 심각하고 간절한 얘기기 때믄에 무거운 이야기와 함께 유쾌한 저항이 필요하다. 지치지 않으려면…. 예술가는 주변에서 교란작전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페멘의 ‘토플리스’ 시위방식도 여성을 상품화한 결국은 충격요법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한 생각은

“나는 오로지 1인 시위만 하는 소심한 시민일 뿐이다. 나도 내가 우크라이나 본부 회원들처럼 ‘감자캐는 김태희’(미인)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시위 모습이 그다지 아름답게 비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아름답고 아니고의 문제는 아니다. 소규모의 시위나 1인 시위는 관심을 끌기 힘들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소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비판하려면 대안을 내고 했으면 좋겠다. 물론 일베들의 신상 털기나 악플도 걱정된다. 시위 이후 페이스북에 친구 추가 요청이 130개가 와 있더라. 나중에 보니 일베들도 많이 있었다. 그건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관심없는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지지해주고 응원해 줬다.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종로 파출소에 연행됐을 때는 어땠나

“경찰들이 편안하게 해줬다. 파출소서 30여분만에 벌금 5만원 내고 나왔다. 나름 경찰을 믿는다. 내 행위를 불법으로 몰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아직은 있다. 경찰은 날 지켜주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하고픈 이야기는.

“정치인들이 이 사안을 대하는 태도에 가장 화가 난다. 또 세월호 특별법을 언론이 호도하는 것도 문제다. 특별법은 대학특례 입학이 아니다. 그건 유족들이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건 반대할 수 있는 법이 아닌데, 정치인들이 법을 무능화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유족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나.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지어내고 하는건 유족을 두번 세번 죽이는 행위다. 그들의 고통을 이해 못하더라도 인정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월호특별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유족들이 원하는 건 진실규명이다.”

-그동안 어떤 행위예술 작업 들을 해왔나 .

“지난해 안산 거리축제도 참여했었고 4대강 공사구역에서 해바라기 씨앗 심는 작업 등을 했다. 해바라기는 한해살이로 학명이 한해살이 태양이다. 씨앗 하나로 2m 넘게 크고 많게는 2570개 정도의 씨앗이 나온다. 우리가 보는 해바라기는 매년 다른거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4대강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해바라기를 심는게 더 낫겠다 싶었다. 왜 자연을 파괴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공사현장에 해바라기 심고 이를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그때부터 비폭력적 저항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다. 4대강을 이른바 ‘삽질’이라고 표현하는 방식도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삽이 아닌 숟가락으로 씨앗을 심었다. 폭력을 시비할 수 있는 것을 아예 없애는 방식을 생각한거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극작과를 졸업했다. 오는 8월 29∼30일 상암 프린지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한다. 작품도 썼고 직접 출연도 한다. 작가는 사회 흐름을 캐치하는 거라 생각한다. 사회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작품활동을 할 것이다. 나는 ‘젊은 외설가’로 불리고 싶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화>를 감명깊게 읽어서 그렇게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그냥 행위예술가 정도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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