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왜 야당을 버렸나

눈앞의 이해만 좇아 이합집산… 계파 싸움 ‘고질병’으로

2014.08.01 21:15 입력 2014.08.01 23:27 수정

(2) 계파 갈등·노선 충돌

18대 대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은 4개월여 뒤인 2013년 4월 대선평가위원회를 통해 <18대 대선 평가보고서>를 내놨다. 당시 평가위는 대선 패배 원인 중 하나로 “당 분열이 계속되고 계파 갈등이 심화되면서 국민 신뢰가 현저히 하락했다”고 진단했다. 설문·면담조사에 응한 당 안팎 인사들은 ‘계파 갈등’을 대선 패인의 첫 번째로 지목했다.

1년여 뒤 7·30 재·보궐선거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새정치민주연합의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대선 패배 후 계파주의 청산 얘기가 ‘반짝’ 나왔을 뿐 ‘계파 갈등’ 고질병은 치유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 3월 안철수 전 공동대표 측 인사들과 통합 이후 갈등은 더 심해졌다.

[민심은 왜 야당을 버렸나]눈앞의 이해만 좇아 이합집산… 계파 싸움 ‘고질병’으로

▲ 야 위기마다 수혈·합당 세 불려 노선 혼선… 대안·정책정당 막아
선거 패배 후 ‘환골탈태’ 외치며 계파 간 당권 교체뿐 변화 없어
재·보선 패인 ‘공천 파동’ 이면엔‘내 계파 챙기기’… 개혁공천 실종

현재 새정치연합 내에는 6~7개 계파가 존재한다. 친노무현계, 정세균계, 김한길계, 구민주계, 민평련계, 486계, 손학규계 등이다. 하지만 친노계만 해도 문재인계와 정세균계, 범친노계 등으로 세분화되는 등 특정 입장과 이해 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이 이뤄진다.

이번 재·보선 참패 원인으로 지목되는 ‘공천 파동’ 이면에도 계파 갈등이 숨어있었다는 분석이 많다. ‘내 계파 챙기기’라는 명제 앞에선 ‘개혁 공천’ 같은 명분과 과제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당 지도부의 ‘사천 논란’에 비해 비당권파들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486 의원들은 안철수 전 대표 측근인 금태섭 전 의원의 서울 동작을 공천을 견제하기 위해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 공천을 주장하다 기동민 전 후보가 전략 공천되자 입장이 갈렸다. 당 지도부는 내려꽂기 공천이 논란을 빚자 이를 486 의원 등 비당권파들의 흔들기 탓으로만 돌렸다.

계파주의 문제는 ‘대안 없이 투쟁만 하는 정당’ 논란 등 노선 갈등으로도 번졌다. 당이 정책정당, 대안정당으로 거듭나려고 해도 계파주의 논리에 막혀 길을 헤맨다는 것이다. 일단 ‘계파’라는 색안경으로 논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어떤 사안이든 토론은 불가능했다.

이 같은 계파 갈등 문제는 그간 야권이 분열과 통합을 거듭해온 데 따른 산물이다. 야권은 불리할 때마다 외부세력 수혈이나 합당으로 몸을 불려왔다. 새정치연합은 2000년 들어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계파들이 나뉘고, 이들의 화학적 결합은 늘 숙제로만 남았다. ‘떴다방’ 수준으로 당이 만들어지다보니 노선도 오락가락했다. 당권이 바뀔 때마다 ‘선명 진보’ ‘중도 강화’ 등 노선 갈등이 불거지면서 정당으로서 자산인 ‘신뢰’만 잃었다.

문제는 계파 갈등이 고질병으로 항상 지적되지만, 계파 청산 논의는 잠시뿐이란 점이다. 툭하면 ‘재창당 수준의 환골탈태’라는 말을 했지만 계파 문제는 건드리지 못했다. 제1야당의 역사는 ‘계파 투쟁의 흑역사’라고 할 만하다. ‘특정 계파의 당권 장악→공천 파동→선거 패배→비상대책위원회 구성→조기 전당대회→다른 계파의 당권 장악’이라는 공식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됐다. 당권을 잡는 계파 얼굴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아예 현재의 계파 지형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이미 형성된 지형에서 친노냐 반노냐 하는 퇴행적 접근이나 다수파가 권력을 잡는 낡은 방식으로는 안된다”며 “새로운 리더들이 새 가치와 노선으로 경쟁하면서 당 재편과 혁신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말짱 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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