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보정당 활로에 ‘타격’

2014.12.22 22:43 입력 2014.12.22 23:04 수정

표현·사상의 자유 위축…변화 모색은커녕 생존 걱정할 판

헌재, 진보와 종북 분리 아닌 진보에 ‘종북 낙인’ 찍는 효과

각개약진 진보정당들에 악재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을 바라보는 진보정당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정의당·노동당·녹색당은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과 폭력사태 이후 ‘합리적’ 진보 노선을 내세우며 진보정당 착근을 위해 고군분투해 왔지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진보세력의 ‘정치적 기본권’이 원천적으로 박탈당하는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생활진보’, ‘녹색진보’ 등 진보정당 내부의 모색 흐름은 정당해산이란 블랙홀에 빨려드는 상황인 셈이다. 진보 의제의 다양성은 위축되고, 진보정당에 ‘종북이냐, 아니냐’는 잣대부터 들이대는 현상마저 생기고 있다.

헌재는 지난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이 이 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밝혔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 이념과 사상의 자유가 위축되면서 진보정당의 활동 반경 역시 좁아질 공산이 크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진보적 민주주의’, ‘자주·민주·통일’, ‘민중주권’, ‘저항권’ 등을 폭력혁명을 통한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와 연결시켰기 때문에 진보정당의 정치적 언어 사용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22일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자칫 한국정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 이전의 보수 일변도로 회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공안당국은 헌재 결정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의 ‘낡은 칼’을 휘두르면서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 일부 보수정치 세력과 보수언론은 통합진보당과 ‘관련성’이 있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솎아내려는 ‘마녀사냥’ 조짐도 보인다.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은 “대대적인 이념공세, ‘빨갱이 때려잡기’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헌재 결정은 ‘진보’와 ‘종북’을 분리한 것이 아니라 ‘진보’에 ‘종북’이란 낙인을 찍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당의 이념, 정책, 문화의 혁신을 통해 도약을 모색했던 진보정당들이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진보 혁신의 ‘내용’으로 국민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정의당·노동당·녹색당은 2012년 통합진보당 폭력사태와 분당 이후 각개약진을 해왔지만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통합진보당에서 떨어져 나온 정의당은 원내 5석을 갖고 있지만 독자생존이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는 극복 대상인 통합진보당에 못 미치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연대론, 제3지대 정당론 등의 아이디어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사회당과 2011년 진보신당 잔존파의 결합체인 노동당은 ‘원칙적인 진보’를 내세우고 있지만 마땅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녹색당은 구진보정치 세력과 선을 긋고, 녹색진보의 싹을 틔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진보정당들의 침체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헌재의 진보당 해산이라는 악재까지 겹친 셈이다. 역설적으로 2012년 이후 정치적 쇠퇴의 길을 걷던 진보당은 헌재와 박근혜 정부의 ‘희생양’이 되면서 다시 한번 진보정치판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한 진보정당 인사는 “다음 총선을 거치면 역사에서 소멸해갈 진보당을 헌재가 살렸다”며 “헌재 결정으로 진보는 더욱 위축되는데 진보당은 주목을 받으면서 진짜 진보정당들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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