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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총리 후보, 의원 배지를 떼라

2015.01.29 21:22 입력 2015.01.29 21:34 수정

국회의원이란 갑옷은 역시 두껍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과 인준은 개봉도 전에 맥이 빠졌다. ‘자판기’ 별명까지 붙은 이 후보자의 선제적 해명 덕이 아니다. 여야의 동업 카르텔이 무섭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아예 소속 의원들을 보내 청문 준비를 돕는다. 검증을 맡을 새정치민주연합은 칼을 뽑을 생각조차 안 한다. “세게 하지 말라”는 내부지침, 희극 같은 청문위원 인선난이 벌어지는 판이다. 부동산 투기, 병역, 논문표절 등 ‘이완구 의혹’은 과거 논란이 된 고위공직 후보자의 단골메뉴들이다. 예전 같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야당은 무디어진 창을 벼릴 줄 모른다. 후보자의 직접 개입 정황이 분명해진 분당 땅투기 의혹에 닷새 만에야 “해명하라”는 논평을 내는 정도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된 이래 고위공직 후보자의 낙마율은 10%를 넘는다. 반면 국회의원 출신 총리나 장관 후보자는 예외없이 100% 무사 통과됐다. 대통령 인사권을 견제하는 국회 인사청문제도조차 여야의 ‘현관 예우’ 앞에선 유명무실한 셈이다.

[양권모칼럼]이완구 총리 후보, 의원 배지를 떼라

‘이완구 총리’가 되면 내각의 3대 축인 총리와 사회부총리(황우여), 경제부총리(최경환) 모두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 출신 현역의원이 맡게 된다. 내각제에서나 가능한 구조다. 지지율 하락으로 다급해진 대통령으로선 여당 통제력을 붙들고, 레임덕을 차단키 위해 사실상 ‘당정 일치’ 진용을 꾸린 모양이다. 이완구 총리 지명으로 “정과 당이 한 몸이 됐다”는 새누리당의 감격(?)이 어색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의도와는 별개로, 총리·부총리를 전부 현역의원으로 채운 것은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국회의원·국무위원 겸직이 내용적으로 전면화돼 권력분립이라는 헌법의 대강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서 3권분립을 엄격히 한 것은 막강한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대통령의 필요에 따라 입법부의 국회의원이 아무 제한 없이 행정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게 반복되면 3권분립의 훼손이 불가피해진다. 여당의 대표와 원내대표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그대로 달고 총리·부총리에 앉으면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에 있어야 할 견제와 균형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실 장관으로 가는 ‘줄’만 끊어도 언젠가 낙점을 고대하며 청와대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여당 의원들이 줄어든다.

물론 의원·장관 겸직이 불법은 아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겸직 금지를 공약했던 여야는 그러나 대선이 끝나자 슬그머니 국회법을 개정,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을 겸직 불허의 예외로 명시해버렸다. ‘의원 장관’이 등장할 때마다 위헌 논란이 일자 아예 헌법의 취지를 틀어 합법성을 꾀한 것이다. 수혜자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 법 개정을 주도했다.

헌법에 내각제 요소가 있어 괜찮다는 견해가 있지만, 내각책임제인 영국조차 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때는 의원 권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대통령제인 미국은 의원이 장관에 임명되면 의원직을 사퇴한다. 한국은 의원을 겸한 장관이 원하면 모든 의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 의결 정족수를 채우는 데 ‘의원 장관’이 동원되는 건 익숙한 풍경이다. 의원 겸직 각료들 보수는 둘 중 택하도록 되어 있는데 모두 장관 쪽을 택한다. 의원 세비 항목 중에서 입법활동비와 특별활동비를 추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원 보좌진과 사무실도 그대로 운영한다.

설령 내각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제도적 여지를 인정하더라도, 실제에선 권력의 논리에 따른 정치적 용도로 운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의원·장관 겸직의 부적절성이 두드러진다. 주로 대통령에게 여당 통제용, 차기 대선 주자 관리, 친정체제 구축, 정치인 보은, 국회 로비 창구 등으로 겸직 제도가 이용됐다. ‘이완구·최경환·황우여’의 경우도 그 어디에 걸친다. 의원·장관 겸직의 장점으로 지목되는 ‘국회 소통’이나 ‘의원 경험 활용’으로 빛을 발한 경우는 역대에 별로 없다.

그렇다면 헌법의 원리에 어긋나고, 유권자의 대표성을 훼손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를 뒤틀리게 하는 의원·장관 겸직의 비정상을 정돈할 때다. 17대 국회 이래 줄곧 겸직 금지가 시도됐지만, 정권의 이해와 정치권의 집단이기에 밀려 번번이 좌절됐다. 막힌 길을 뚫을 수 있다. 이완구 후보자가 의원직을 내놓음으로써 전범을 세우는 것이다. 최소한 의원·장관 겸직의 폐단을 막는 대안 마련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소문대로 그가 ‘큰 꿈’을 도모한다면 1년 남은 의원직에 연연할 이유도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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