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비전향장기수 김동기

2000.08.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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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도 안되는 비좁은 독방에서 무려 33년이란 긴 세월을 비전향 장기수로 복역한 김동기씨(68). 그가 9월2일 북으로 송환된다. “말이 쉬워서 30년, 40년이지 독방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것은 고독, 즉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거의 다 정신이상자로 불우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나로서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서 33년 동안 가슴만 시커멓게 태웠던 게 있었다. 바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높은 천장에서 30촉 백열등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때면 정말이지 사람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었다”

“내 소원은 살아서 따뜻한 온돌방에 두다리를 쭉 펴고 잠 한번 자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겨울에 꽁꽁 언 몸으로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온돌방에 펴놓았던 이불을 젖히고 뜨끈뜨끈한 아랫목으로 나를 밀어넣었다. 온돌방이 따뜻한 것은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태워서 그렇게 따뜻했던 것임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어머니의 사랑을 느껴보는 게 내 간절한 소망이었다”

최근 김씨가 펴낸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라는 제목의 수필집엔 33년 독방생활을 견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출발 준비로 바쁜 김씨를 그가 머물고 있는 광주 북구 두암동 ‘통일의 집’에서 만나 무엇이 그를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으며 송환을 앞둔 심경과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등을 알아보았다.

-비전향 장기수 62명의 북송이 9월2일로 확정됐다. 소감은.

“날짜를 통보받기 전까진 담담했다. 어려운 고비를 많이 겪어 웬만해서는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정식 통보를 받고보니 ‘이제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들뜨고 조급해진다. 이달 말까지 사람들을 만날 계획으로 꽉 차 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모든 약속장소를 집으로 했다. 마음 속으로 34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있다. 북에 가서는 보고를 어떻게 해야 되나(김씨는 이 부분을 ‘나의 표현’이라고 토를 달았다)를 정리하고 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사랑과 정을 주었다”

-챙기는 짐은 어떤 것들인가.

“옥살이할 때 손때가 묻은 사전 2권과 이번에 출판한 책 5권, 저자들이 선물한 책 등을 골랐다. 입던 옷과 양말, 내의 등도 챙기고 있다. 교도소에서 생활할 때 옷이 제일 귀했다. 면회오는 가족이 없어 쓰레기통에 버린 옷을 주워 세탁해 입고 추위를 견뎠다. 남겨두면 쓰레기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것들이다. 한라산에서 가져온 흙 한줌과 돌멩이 몇개, 그리고 무등산의 흙과 낙동강의 모래 한줌도 싸 놓았다. 무등산의 흙은 죽기 전에 통일이 안되면 내 무덤에 뿌리기 위해서이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준 시계, 아내의 속옷, 가전제품, 메달 등 선물도 가지고 갈 생각이다. 간첩이고 빨갱이인 나에게 베풀어준 따뜻한 은혜를 잊지 않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이산가족들이 편지나 사진 등을 전해달라는 부탁이 많다는데….

“책을 출판한 뒤 TV와 라디오 프로에 몇번 나가고 신문에도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내왔다. 대부분 사정이 있어 이산가족 신청을 못했거나 신청을 했어도 순위가 늦은 사람들이다. 편지나 사진, 자신이 쓴 시집 등 부탁받은 것이 100여건이다”

-남북 이산가족이 3박4일간의 상봉을 마치고 평양과 서울로 돌아갔다.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반성을 많이 했다. 거창하게 통일만 생각했는데 민족의 아픔이 저것이구나, 저들의 한과 눈물을 쓰다듬어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송환일자를 통보받고는 보름 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TV를 껐다”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를 출판했는데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배경, 목적은 무엇인가.

“출감 후 주위사람들이 옥중기나 회고록을 쓰라고 했으나 반대했다. 감옥 안에 있을 때 종이가 발견되면 간직했다가 하루 5~20장씩 일기를 썼다. 소제목을 달아 정리해보니 200자 원고지로 960장이 됐다. 모 월간지 기자에게 보여줬더니 고치지 말고 그대로 출판하자고 했다. 책을 내려고 쓴 게 아닌데 결국 민가협에서 출판했다”

-33년이란 긴 세월을 독방에서 버텨낸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출감 후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첫째는 민족적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구권과 소련이 무너졌을 땐 실망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 전향 권유에 응하지 않았다. 동구나 소련이 무너진 것은 물질이 중요시되는 사회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북에서 생활할 때 사회제도가 나에게 준 혜택을 생각하며 충성해야겠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가족으로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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