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 읽기

편지로 나눈 3인의 35년 우정

2007.04.06 15:58

수간(手簡)이란 요즈음 말로 하면 편지이다. 지금은 세상이 편해져서 전화, e메일, 팩스, 화상 대화 등 통신 수단이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친구나 부모님 또는 연인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편지였다.

조선시대로 돌아가 보자. 서울 사는 아버지가 대구로 시집간 딸의 소식이 궁금해 연락을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할까? 양반 신분으로 집안에 하인이 있다면 하인을 보내거나, 발걸음이 빠른 심부름꾼을 사서 보낼 수도 있다. 심부름만 전문적으로 하는 심부름꾼을 예전에는 전인(專人)이라고 하였다. 전인을 부리려고 하면 왕복 경비에 수고비까지 주어야 한다. 몰락한 양반의 경우 하인도 없고 전인을 살 돈이 없어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보면 이봉학이 전인을 사서 함경감사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대목이 나온다. 추사 김정희가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보내는 편지, 아벨라르도스가 엘로이즈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감탄과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삼현수간’은 조선 전기의 대학자인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1534~99), 우계(牛溪) 성혼(成渾·1535~98),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84) 세 분의 편지 모음집이다. 송익필은 서문(사진)에서 “나 송익필은 우계 성혼, 율곡 이이와 가장 친하게 지냈다. 지금 둘 다 세상을 떠나고 나만 살아있다. 몇 날이나 더 살다가 죽을 것인가? 아들 취대(就大)가 지난 전쟁인 임진왜란으로 흩어지고 없어졌지만 남아있는 두 친구의 편지와 내가 답장한 글, 잡다한 기록을 약간 모아 나에게 보여 주었다. 모두 모아서 서첩으로 만들고 죽기 이전에 보고 느끼는 자료로 삼기로 하였다. 또 우리 집안에 전하고자 한다. 1599년 봄에 송익필 씀”이라고 하였다.

‘삼현수간’은 모두 4권의 첩으로 돼있으며, 98통의 편지(1통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세 분의 문집에 들어가 있지 않은 편지가 16통이 있어 세 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편지를 교환한 시기는 1560년부터 1593년까지 계속된다. 즉 세 분이 20대 중반부터 서신 왕래를 해 개인적인 일, 학문과 관련된 사항, 율곡이 먼저 세상을 떠나 안타까워 한 일 등 35년이란 세월을 두고 교유를 한 것이다. 세 분의 두터운 우정은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아도 감동적이고, 이런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롭다.

글씨를 보더라도 모두 대가의 수준을 이루고 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게끔 썼으며, 한국서예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송익필의 초서(草書)는 기운이 넘쳐흐르고, 이이는 재기발랄하며, 성혼은 아버지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1494~~1564)의 글씨를 이어받아 온화하면서 힘이 있다”고 작고하신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선생은 평가한 바 있다.

〈임재완|삼성미술관 리움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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