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옷장수’

2007.06.25 17:51

헨리 포드가 값싸고 좋은 자동차를 만들겠다며 동분서주할 때다. 돈이 필요했던 포드에게 한 은행가는 “말들이 저렇게 많은데 ‘쇠 말’이 필요하겠냐”고 코웃음을 쳤다. 자동차(car)란 말이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쇠로 만든 말’(carro)에서 나온 것을 빗대 멋을 부려 퇴짜를 놨지만, 은행가의 판단은 틀렸다. 포드는 노동자 월급을 두 배로 주면서 차값은 반으로 낮춰 자동차의 왕에 올랐다.

하우드 슐츠도 1982년 별다방(스타벅스)을 막 열었을 때 괴짜 취급을 당했다. 좋은 커피와 편안한 만남을 제공하는 ‘신개념 다방’을 내세우자, 사람들은 ‘다방 같은 소리 한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슐츠가 옳았다. 최고급 원두와 최고의 노동자 복지를 고집하는 별다방은 25년 만에 7500여개로 늘었다. “책상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던 슐츠는 세계 최대 다방 주인이 됐다.

단일 규모로 미국내 최대 의류회사인 아메리칸 어패럴(AA)의 설립자 도브 차니(37)는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괴짜다. 경쟁자들과 거꾸로 가는 옷장수다. 남들이 저임금을 좇아 중국과 중남미로 공장을 옮길 때 그는 미국 대도시 한가운데에 공장을 차린다. 남들이 옷 왼쪽 앞가슴에 로고를 새길 때 그는 노 브랜드를 고집한다. 노동자들에겐 임금을 두 배로 주고, 옷값은 패션 브랜드의 반값으로 판다. 남들이 아웃소싱에 열을 올릴 때, 목화 구입에서 판매까지 수직계열화했다. 티셔츠와 속옷, 진 등 면제품만 취급하는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억달러에 달한다. 1998년 29살의 괴짜가 세운 AA는 5000여명을 고용하고, 11개국에 143개 직영매장을 둔 패션계의 떠오르는 별이 됐다.

AA 본사는 로스앤젤레스의 도심 빈민가에 있다. 여기서 매주 100만벌의 티셔츠가 생산된다. AA의 제품엔 로고가 없는 대신 제품 표시란에 ‘LA산(made in downtown LA)’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다. 미국, 그것도 LA 한가운데에서 만들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캘리포니아주가 정한 최저임금이 시간당 6.75달러인 데 반해 이 공장 노동자들의 시급은 평균 12달러가 넘는다. 중국이나 도미니카의 봉제공장 노동자 시급이 30센트인 점에 비춰 40배가 넘는 고임금인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차니는 유기농 목화를 고집한다. 유전자변형(GMO)은 물론 살충제도 쓰지 않은 목화로 만든 유기농 티셔츠를 2004년 시장에 내놓았다.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환경도 해치지 않는 이른바 ‘윤리적 패션’의 선구다. 올해까지 모든 제품의 80%를 값비싼 유기농 면화로 만들 계획이다. 그런데도 이 회사의 총수익(매출에서 임금과 재료비 등 제조원가를 뺀 금액)은 80%에 달한다. 미국 전체산업의 평균 총수익 60%를 훨씬 웃돈다. 가히 수수께끼다.

차니는 “우리 회사 노동자들은 더 행복하고 더 의욕적이며 더 열심히 일하고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 AA에 일하겠다는 취업 대기자만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이 땀으로 범벅된 저임금 공장(sweatshop)과 비교할 수 없는 디자인과 품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에 공장을 둔 것보다) 유행의 변화와 고객의 급한 주문에 훨씬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윤리적 소비 붐도 한몫 한다. 소비자들은 AA의 티셔츠를 입으면서 적어도 외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구매행위가 환경에도 도움을 준다는 위안을 얻는 것이다.

차니는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착취하는 불법적인 작업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미국 내에서 윤리적인 방법으로 생산되는 제품보다 결국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제조업 공동화와 일자리 감소가 결코 선진국의 숙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니가 AA를 세울 무렵 한국 의류산업의 중흥을 예고했던 동대문 상가에 요즘 쇠락의 빛이 뚜렷하다. 값싼 중국산으로 뒤덮였다. 주문에서 생산까지 반나절 만에 소화하던 민첩함과 동대문만의 패션감각이 무뎌졌다. 외국인 보따리 장수들의 발길도 뜸해졌고, 상가에는 헐값 매물이 쏟아진다고 한다. 샌드위치 위기를 벗어날 대안이었던 동대문이 10년도 안돼 샌드위치 함정에 빠졌다. 샌드위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발상을 바꾸는 것이다. 좌우에서 협공하면 위로 튀어 오르고, 아래 위로 짓눌리면 옆길을 찾아야 한다. 차니의 역발상으로 본다면 동대문의 활로는 중국이나 베트남에 있지 않다. 청계천 장인들의 솜씨를 되살리고, 소비자에게 윤리를 파는 것이다.

〈유병선 논설의원〉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