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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 1위 맹타, 두산 김현수 ‘연습생 신화’

2008.05.19 17:55
김창영기자

“마음 먹은 공 오기로 때렸다”

약관 20세. 하늘을 찌르는 인기가 부담스러울만도 한데 그는 좀처럼 독주 레이스를 멈출 줄 모른다. 심정수, 양준혁이란 거물급 타자들이 2군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요즘 김현수란 이름 석자가 더욱 빛을 발한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김현수는 ‘공포의 2번타자’로 불린다. 타율 1위(0.353)에다 최다안타 1위(55개). 속된 말로 방망이를 스치기만 해도 안타다. 에이스란 꼬리표를 단 각팀 간판투수들이 외모만 보면 애송이 티가 남아 있는 그를 만나면 무서워하는 이유다. 이제 프로 3년차인 그가 프로지명을 받지 못해 신고선수로 입단했다는 과거까지 알게 되면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현 한화코치)이 만들어놓은 ‘연습생 신화’란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프로야구 두산 김현수는 올 시즌 방망이 끝에 자신감을 실었다. 잔뜩 충전한 자신감은 김현수를 연습생이 아닌 당당한 타격 1위 주전으로 만들었다. “연습생? 이젠 지난 일”이라고 말하며 웃는 김현수의 방망이는 그래서 더욱 힘있어 보인다.  |김정근기자

프로야구 두산 김현수는 올 시즌 방망이 끝에 자신감을 실었다. 잔뜩 충전한 자신감은 김현수를 연습생이 아닌 당당한 타격 1위 주전으로 만들었다. “연습생? 이젠 지난 일”이라고 말하며 웃는 김현수의 방망이는 그래서 더욱 힘있어 보인다. |김정근기자

요즘 가장 잘나가는 타자 김현수는 정말 새로운 연습생 신화를 쓰고 있을까. 지난 16일 잠실구장 삼성전에 앞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 프로지명 못 받은 ‘고교 타격천재’

그는 프로지명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부족한 것이 많았을 것”이라며 아픈 과거는 잊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8월31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면서 “야구가 이게 다인가. 다 끝났다. 야구를 그만두어야 하는가란 생각에 펑펑 울었다”고 했다.

2005년 신일고를 대통령배 준우승, 전국체전 우승으로 이끌면서 이영민 타격상(2005년)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선수였다. 하지만 8개 구단 스카우트들은 그의 고교 성적을 평가절하했다. 결국 2006년 신인2차 드래프트 9라운드를 거친 66명 가운데 그의 이름은 없었다.

스카우트들은 “타격에는 재질이 있지만 수비도 그저 그렇고 발이 느리다”면서 “고교 에이스들과 맞대결이 거의 없어 타격 성적에 거품이 꼈다”는 이유를 댔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김현홍 두산 스카우트 팀장. 계약금 없이 연봉 2000만원의 조건이었다. 그렇게 그는 연습생 신분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2006년 성적은 1경기 1타석. 그것도 대타신분. 다시 2군행.

김경문 감독은 “(현수는) 2007년 스프링 캠프 때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강도높은 훈련을 소화했다”며 “차세대 자질이 보이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 김경문과 김현수

2007년 시즌 주전 멤버인 유재웅이 부상을 당하자 교체 멤버로 데뷔했다. 그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99경기에 출전, 타율 2할7푼3리, 87안타에 홈런 5개를 쏘아 올리면서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다. 2군 설움을 털고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발이 느리다’는 평가도 도루 8개를 훔치면서 반전 기회를 만들었다.

김현수는 “타석에 들어설 때 머릿속에 스트라이크존을 그려넣고 임했다”면서 “만루 상황에서 자신있게 친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섰다. 볼이 가운데로 몰려서 받아쳤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광림 타격코치는 “주자가 있어도 긴장하지 않는 강심장과 공격적인 자세가 (김)현수의 비결”이라고 극찬했다.

김현수는 올 시즌 야구계의 관례도 깨고 있다. 4번 같은 2번타자다. 1·2번 타자를 ‘밥상을 차린다’는 의미로 ‘테이블 세터’로 부른다. 그런데 김현수는 밥상도 차리고, 식사도 즐기고, 설거지까지 해낸다는 것이다. 타점도 28개를 올렸다.

왼손 투수를 상대로 3할4푼5리(58타수 20안타)를 쳐내 왼손타자가 왼손투수에게 약하다는 속설도 깨고 있다.

타격 비결에 대해 그는 “타석에서 고민없이 생각한 공이 들어오면 그대로 방망이를 휘두른다”며 “작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공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때리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또 “고교 스타가 고액연봉을 받고 프로에 들어와 야구를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면서 “프로에 지명받지 못하고 신고선수로 들어온 (김)현수가 성공한다면 야구 새싹들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어 감독으로서 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연습생 신화’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저 소박한 꿈만 꾼다. “전 경기 출전이 목표고 개인 타이틀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다”고.

그는 “야구광이었던 아버지와 야구장을 자주간 것이 야구선수가 된 계기가 됐다”며 “지금도 원정경기를 제외하곤 항상 아버지(김준경·59)가 승용차로 출퇴근을 시켜주고 항상 관중석에서 기록을 메모해 주시는 든든한 매니저”라고 자랑했다. 또 어머니(이복자·57)를 떠올리면서 “매일 같이 홍삼을 다려주시는 어머니께 감사드린다”면서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다치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이 효도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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