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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위 듀스 (Deux) ‘Deuxism’

2008.06.19 17:31
강일권 | 웹진 리드머 편집장

절정의 그루브로 ‘힙합 발전 기폭제’

미국 흑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힙합 음악은 1990년대 초반 댄스 음악에 랩이 가미되는 이른바 랩 댄스라는 변형된 형태로 국내 가요계에 그 첫 모습을 드러냈다. 현진영과 와와 2기로 함께 활동했던 죽마고우 이현도와 고(故) 김성재가 결성한 듀스는 같은 시기 미국 흑인 음악 씬의 흐름을 주도하던 뉴잭스윙(New Jack Swing·기존 리듬 앤드 블루스와 힙합이 결합한 형태의 음악) 스타일을 도입한 데뷔작으로 국내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힙합이라는 음악을 알렸다. 이들은 뉴잭스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프로듀서 겸 싱어 테디 라일리에게 영향을 받은 지극히 미국적인 감성의 음악과 국내 정서에 맞는 멜로디의 보컬라인을 적절히 매치시켜 음악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러한 듀스의 음악적 역량이 절정의 빛을 발한 작품이 바로 두 번째 앨범인 ‘Deuxism’이다. 본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프로듀싱을 맡은 이현도가 흑인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그루브와 마디의 반복을 통해 중독성을 생산해내는 힙합 음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상태에서 한국적 감성을 녹여내 앨범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84위 듀스 (Deux) ‘Deuxism’

타이틀곡 ‘우리는’의 경우, 발표된 지 무려 14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다채로운 사운드 소스와 구성이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 역동적인 비트를 듣고 있노라면, 오늘날 대부분의 힙합 뮤지션이 힙합음악을 만드는 데 그루브에 대한 중요성을 얼마나 간과하고 있는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록 그룹 H2O가 참여한 ‘Go Go Go’와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효과음의 삽입이 재밌는 ‘약한 남자’도 마찬가지다. 절정의 중독성을 뿜어내는 건반과 두 멤버가 ‘~고’로 모든 구절의 라임을 맞추는 센스를 발휘한 ‘Go Go Go’,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멜로디와 흥겨운 비트가 절로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약한 남자’ 모두 “당시의 국내 앨범이 맞나?” 싶을 정도로 꽉 찬 구성과 그루브함을 자랑한다. 물론 이들의 보컬적인 측면을 놓고 보면, 음악적인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발라드와 록 음악만이 전부였던 국내 대중의 입에서 힙합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흘러나오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동시에 랩과 힙합을 앞세운 가수들이 가요계에 등장하게 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등 여러모로 한국가요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한국의 힙합 음악은 예전의 어설픈 음악적 형식과 완성도를 집어 던지고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미국 본토 음악의 주체적 수용이 아닌 단지 모방과 흉내내기에 그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힙합 키드들의 이른바 ‘가요 느낌’에 대한 반사적인 거부감도 하나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요적’이라고 해서 힙합 음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얼마나 우리의 정서를 잘 녹여낼 수 있느냐다. 듀스의 ‘Duexism’은 이에 대한 아쉬움을 날리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한국 힙합의 효시가 되었던 본작은 ‘모방’과 ‘주체적 수용’ 사이에 존재하는 얇은 선의 차이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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