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검, 오는 21일 새벽 3~5시, 12년을 별렀다

2010.02.09 17:40 입력 2010.02.10 00:18 수정
윤민용 기자

담금질 준비중인 이상선·이은철·홍석현 도검장

‘나에게 사인이라 이름하는 칼이 있어/ 땅귀신을 두렵게 하고 천신과도 통하는데/ 백은으로 단장하고 침향으로 꾸몄으며/ 광채는 서리 빛처럼 반짝거린다/ 내 몸을 방어하니 두려울 게 무엇이며/ 삿된 귀신 절로 피해 나를 범하지 못하네 / (…)’ 조선 중기의 문인 상촌 신흠이 사인검(四寅劍)을 얻은 뒤 지은 시다. 신흠은 문집 <상촌집>에 사인검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세속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인년, 인월, 인일, 인시에 두드려 제조한 칼을 사인검이라 한다. 이것이 잡귀를 물리친다고 하는데, 갑인년(1614년) 정월에 동양위가 나를 위해 이 칼을 만들어 주었다.”
동양위는 선조의 둘째딸 정숙옹주와 혼인한 신흠의 아들 신익성이다. 조선시대 왕족만이 만들 수 있었던 사인검은 호랑이띠에 해당하는 인년에만 제작이 가능한 특별한 칼이었다. 그러나 왕조는 망했고 도검의 명맥은 끊겼다. 사인검 또한 잊혀졌다.
올해는 경인년. 12년 만에 사인검을 만들 수 있는 날이 돌아온다.
사인검을 만드는 장인들과 사인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감독, 그리고 사인검 연구에 평생을 매달린 이들을 만났다.

왜 그들은 사인검에 미쳐 있는가.

사인검, 오는 21일 새벽 3~5시, 12년을 별렀다

올해 사인검을 만들 수 있는 날은 오는 21일과 다음달 5일이다. 12년에 한 번 오는 기회를 두고 전통도검 장인들은 지금 사인검 제작 준비에 한창이다. 전문가들은 대표적 도검장으로 이상선, 이은철, 홍석현 등 세 사람을 손꼽는다. 옛 문헌에 따르면 사인검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두 시간이다. 두 시간 동안 한 자루의 칼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검 제작 공정의 한 단계를 이 시간에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인들마다 진행하는 제작공정도, 관심 갖는 부분도 다르다.

조선시대 곽재우 장군의 검과 백제 환두대도 등을 복원한 바 있는 경기 고양의 전통도검제작소 홍석현 장인(55)은 공예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칼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래 나전칠기로 공예에 입문한 그는 1980년대 중반 칼에 상감하는 작업을 보면서 전통검 제작에 뛰어들었다. 사인검을 복원해 2003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그는 21일 새벽 칼날을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검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2가지가 있습니다. 녹여서 만든다는 기록도 있고 두드려서 만든다는 기록도 있어 두 개 다 준비를 해보려고 합니다.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쇠를 달궈서 그 시간 동안 칼날을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통제철·제강 방식으로 사인검을 만드는 과정. 전통제철로(맨 위 사진)에 철광석을 이고(중간), 그 후 만들어진 쇳덩이를 망치로 두드려서(아래) 불순물을 제거한 뒤 칼을 만든다. | 백련도검연구소 제공

전통제철·제강 방식으로 사인검을 만드는 과정. 전통제철로(맨 위 사진)에 철광석을 이고(중간), 그 후 만들어진 쇳덩이를 망치로 두드려서(아래) 불순물을 제거한 뒤 칼을 만든다. | 백련도검연구소 제공

40여년째 전통도검을 만들고 있는 경북 문경의 고려왕검연구소 이상선 소장(55)은 어린 시절 종묘제례 때 사인검을 본 후 사인검 복원에 매달려왔다. 검결과 별자리 등 사인검의 모양을 복원한 건 오래됐지만 제대로 준비해서 만든 것은 1998년과 올해라고 했다. 그는 인시(寅時)에 열처리한 칼을 사인검이라고 했다. 열처리란 담금질이다. 고온으로 열처리한 칼을 물에 담가 식히는 작업을 반복해 칼날의 성질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쇳덩이를 두드리고 펴서 칼날 모양으로 만드는 단조(鍛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1일에 사인검을 만들 작정인 이 소장은 불량품이 생길 것을 감안해 40여 자루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전국의 대장간과 주물공장을 돌며 명맥이 끊긴 전통제철·제강 방식을 복원한 경기 여주 백련도검연구소의 이은철 장인(53)은 과학적 측면에서 전통 칼날을 복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는 손잡이, 칼집 등 칼의 외양을 꾸미는 과정을 진행하기 전까지, 칼의 몸체를 만드는 전 과정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한다. 장식은 장인에게 따로 맡긴다. 그간 숱한 검을 만들어봤지만 사인검에 도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인검의 형태를 완성해 파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전통방식을 고증해 충실히 사인검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그는 직접 제철·제강·단조 작업을 한 2~3자루의 칼을 인시에 담금질할 예정이다. “사인검에는 담금질을 안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담금질을 안하면 칼로서 생명이 없다고 봅니다. 담금질을 하기 전에는 칼 모양에 불과한 철덩어리일 뿐이지요.” 모든 과정을 수작업하는 전통도검 제작방식을 고집하다 보니 오랜 시일이 걸린다. 21일 열처리를 하는 사인검도 석 달 가까이 연마를 해야 제대로 된 칼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검은 어떤 외양으로 꾸미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사인검의 외양만 복원하는 것은 근본적인 접근이 아니라고 봅니다. 기술자로서 사인검을 만드는 자세에 충실해야겠지요.”

<윤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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