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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함께 사는 서울의 공동체마을, 마포 성미산마을

2010.04.28 12:03 입력 2010.04.28 12:11 수정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 해발 66m의 나지막한 동네 뒷동산이다. 1993년 시작한 공동 육아 계획에서 비롯된 공동체가 '성미산 마을'을 이루며 발전했다.

아이들의 잰 걸음으로도 정상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길 따라 늘어선 나무와 꽃들은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준다. 아이들은 산에 나무를 심고 자기 이름표를 달아 놨다. '나무야 사랑해' '나무야 홧팅!'등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같이 써 놨다. 아직 푸른빛을 띄기엔 이른 계절이지만 아이들이 심어 놓은 꽃나무 덕택에 산길이 알록달록하다. 어른들은 운동복 차림으로 흙길을 밟으며 산책을 한다. 뒤따라 나온 강아지들도 신이 나서 뛰어 다닌다.

이곳 성미산은 서울 시내에 있다. 높은 아파트 건물 사이에 아스팔트길만 떠오르는 서울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성산동, 서교동, 망원동이 산을 중심으로 둘러섰다. 이곳에 거주하는 1천여 명의 주민들이 '공동육아', '공동교육', '공동생활'을 하면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간다.

'어린이집을 직접 만들어보자'며 시작한 성미산 마을

성미산학교 아이들이 마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학교 아이들이 마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 이다일기자

이 동네에 와서 성미산 마을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모두들 어리둥절해한다. 성미산 마을은 행정구역이 아니다. 성미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육아를 비롯한 커뮤니티를 이룬 것을 이른바 '성미산 마을'이라고 부른다. 성미산 마을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94년이다. 이들의 목적은 간단했다. '공동육아', 나의 아이와 이웃의 아이를 같이 돌본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처음 시작된 사업이 어린이집을 직접 만든 것.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어린이집의 전세금을 마련했고 부모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했다. 지금이야 전국에 50개가 넘는 어린이집이 공동육아 형태로 운영되지만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처음 어린이집에 들어간 아이들은 지난해로 성년이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 발전해온 성미산 마을도 이제 성년의 나이에 들어섰다.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의 '공동' 프로젝트는 꾸준히 늘어났다. (사)사람과 마을 위성남 위원장은 "어린이집을 통해 시작된 커뮤니티가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학교를 만들게 됐고 같이 생활하다 보니 작은 찻집과 서로의 물건을 나누는 가게 그리고 유기농 음식을 파는 가게까지 생겨나게 됐습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성미산 마을의 일원으로 일컫는 커뮤니티는 40~50개에 이른다. 동네 주민들끼리 하는 조기축구회도 커뮤니티고 공동 투자한 찻집도 커뮤니티다. 위 위원장은 "'성미산 마을'은 지리적 구분이 아니에요.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생겨나는 커뮤티니들의 모임이죠."라며 마을의 개념을 설명한다.

'함께 해보니 되더라고요"

성미산 지키기 운동은 지난 2003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이다일기자

성미산 지키기 운동은 지난 2003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이다일기자

어린이집이 생겨난 지 10년째인 지난 2003년. 마을에 큰 일이 일어났다. 마을의 휴식처이자 공동체의 중심이 됐던 성미산이 개발 위기에 처한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이곳을 배수지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자면 나지막한 산에는 길이 뚫려야 하고 물을 담을 저수 공간도 생겨야 했다. 나무는 잘려야 했고 구릉에 불과한 낮은 산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 시의 정책에 반발하고 나섰다. 아이들과 함께 산을 지키기 위해 불침번을 서며 온몸으로 공사를 막아냈다. 결국 산은 지켜졌고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함께 해보니 되더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후 성미산 마을에는 굵직한 공동체 사업들이 펼쳐졌다. 어린이집에 이어 대안학교를 만들었다. 재학생 50여명에 불과하지만 '사람간의 관계'를 우선으로 가르치는 학교다. 미인가 교육시설이라 아이들은 검정고시를 봐야 하지만 타 지역에서 학교를 찾아 이사 올 정도로 인기가 좋다. 또한 동네 한편에 건물을 짓고 마을 극장을 만들었다.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공연을 하기도 하고 동네주민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어린이집은 하나 더 늘어나 모두 두 곳의 어린이집이 운영 중이며 마을 주민들끼리 자동차를 나눠서 소유하자는 '카 쉐어링'을 시작하기도 했다.

16년째 이어지는 조용한 변화

벽화/ 성산동 주민자치 위원회가 2009년 5월 그린 벽화다. 성미산을 가로지르는 길에 아이들과 함께 벽화를 그려 꾸몄다. 동네 아이들은 이 길을 따라 산에 놀러가기도 하고 어린이집과 학교에서는 이 길을 따라 현장학습을 다닌다. / 이다일기자

벽화/ 성산동 주민자치 위원회가 2009년 5월 그린 벽화다. 성미산을 가로지르는 길에 아이들과 함께 벽화를 그려 꾸몄다. 동네 아이들은 이 길을 따라 산에 놀러가기도 하고 어린이집과 학교에서는 이 길을 따라 현장학습을 다닌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마을은 조용하게 변화하고 있다. (사)사람과마을 위성남 위원장은 "이 동네에 저희만 사는 게 아니거든요. 저희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계시고 누가 옳다고 고집할 수 없어요. 천천히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성미산 마을에 대해 설명했다. 사실 성미산 마을은 일관된 조직이 없다. 마을의 회장도 없고 조직도조차 없다. 위 위원장은 "작은 커뮤니티들이 필요하면 생겼다가 필요 없으면 사라져요. 그분들을 저희는 모두 성미산 마을 주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간 성미산 마을은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TV의 다큐멘터리에도 나왔었고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주제로 연구논문도 발표됐다. 각박한 도시생활이 비단 빼곡히 놓인 아파트 건물과 굳게 닫힌 철문 때문이 아니라 이웃과 교류하며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문제임을 성미산 마을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은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린이집'을 고민하던 사람들이 이제 '귀촌'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강원도에 땅을 사고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제2의 성미산 마을은 '귀촌'을 주제로 해서 펼쳐질 모양이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am@khan.co.kr>

자료협조 (사)사람과 마을

(가는길)

지하철 6호선 망원역에서 내려 5분정도 걸으면 인근 지역이 모두 성미산 마을이다. 성서초등학교 입구를 중심으로 성미산 마을에서 운영하는 가게와 찻집들이 큰길에 늘어서 있다. 성미산은 성서초등학교 정문 옆으로 오르면 된다.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한 나지막한 산이다. 성서초등학교 까지는 7013번 버스가 운행된다.

(관련정보)
성미산 마을극장 http://cafe.naver.com/sungmisantheater
성미산학교 http://www.sungmisan.net/
성미산어린이집 http://sungmisankids.net/


율은 사랑 나무/ 지난 4월에는 성미산에 나무 심기 행사가 있었다. 이 나무도 그때 심어진 것이다. 명찰에는 '율은 사랑 나무'라고 써있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이 모여 산의 등산로 곳곳에 나무를 심었다. 아이들의 이름표가 붙은 나무들은 벌써 울긋불긋한 꽃이 피어났다. / 이다일기자

율은 사랑 나무/ 지난 4월에는 성미산에 나무 심기 행사가 있었다. 이 나무도 그때 심어진 것이다. 명찰에는 '율은 사랑 나무'라고 써있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이 모여 산의 등산로 곳곳에 나무를 심었다. 아이들의 이름표가 붙은 나무들은 벌써 울긋불긋한 꽃이 피어났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마을 사랑방/ 까페 '작은나무'는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다. 손님이 왔을때도 이곳에서 차를 한잔하기도 하고 지나가다 유리창 너머로 아는 얼굴이 보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이 까페는 주민들의 공동 출자를 통해 만들어졌다. 목표는 '수익을 내지 않는 것.' 작은 수익이라도 나오면 재투자를 하거나 자원봉사로 일한 운영위원들을 위해 쓰인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마을 사랑방/ 까페 '작은나무'는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다. 손님이 왔을때도 이곳에서 차를 한잔하기도 하고 지나가다 유리창 너머로 아는 얼굴이 보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이 까페는 주민들의 공동 출자를 통해 만들어졌다. 목표는 '수익을 내지 않는 것.' 작은 수익이라도 나오면 재투자를 하거나 자원봉사로 일한 운영위원들을 위해 쓰인다. / 이다일기자

두레생협/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믿고 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협동조합니다. 이곳은 하루 250~300명의 고객이 찾는 동네의 명소다. 생협을 만든이들도 성미산 마을 조합원들이고 여기서 물건을 구매하는 이들도 조합원들이다. 좋은 물건을 믿고 사서 먹으니 조합원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 이다일기자

두레생협/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믿고 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협동조합니다. 이곳은 하루 250~300명의 고객이 찾는 동네의 명소다. 생협을 만든이들도 성미산 마을 조합원들이고 여기서 물건을 구매하는 이들도 조합원들이다. 좋은 물건을 믿고 사서 먹으니 조합원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입구/ 성서초등학교 입구로 통하는 길이 바로 성미산 입구다. 서울의 여느 주택가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이 길을 따라 '성미산 마을'의 각종 공동체들의 모여 있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입구/ 성서초등학교 입구로 통하는 길이 바로 성미산 입구다. 서울의 여느 주택가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이 길을 따라 '성미산 마을'의 각종 공동체들의 모여 있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산책로/ 해발 66m의 성미산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산책로다. 어릴적 뛰어놀던 동네 뒷동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은 둘러보는데 30분이 걸리지 않는 작은 산이다. 주민들이 가꾼 등산로와 계단식 야외극장은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 이다일기자

토끼와 함께 산책을/ 얼마 전 이 동네로 이사 왔다는 초등학교 1학년 정기청어린이는 "집 뒤에 산이 있어서 산책도 하고 엄마랑 놀러도 나오니 좋다"며 동네 자랑을 했다. 집에서 키우는 토끼, 토미와 바람이와 함께 햇볕을 쬐러 나왔다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 이다일기자

토끼와 함께 산책을/ 얼마 전 이 동네로 이사 왔다는 초등학교 1학년 정기청어린이는 "집 뒤에 산이 있어서 산책도 하고 엄마랑 놀러도 나오니 좋다"며 동네 자랑을 했다. 집에서 키우는 토끼, 토미와 바람이와 함께 햇볕을 쬐러 나왔다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어린이집/ 어린이집으로 시작된 성미산 마을은 최근 어린이집을 하나 더 늘렸다. 성서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어있는 어린이집은 흙으로 된 마당을 가졌기 때문에 어린이집으로 낙점됐다. 오후 3시, 아이들이 낮잠자는 시간이라 누구 한명 깰세라 조용히 구경만 하고 나와야 했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어린이집/ 어린이집으로 시작된 성미산 마을은 최근 어린이집을 하나 더 늘렸다. 성서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어있는 어린이집은 흙으로 된 마당을 가졌기 때문에 어린이집으로 낙점됐다. 오후 3시, 아이들이 낮잠자는 시간이라 누구 한명 깰세라 조용히 구경만 하고 나와야 했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마을극장/ 넓은 단독주택이 있던 터에 시민단체와 함께 건물을 세웠다. 그리고 지하에는 마을극장을 만들었다. 성미산 마을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동네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연도 펼쳐진다. 또한 마을의 중요한 회의도 이곳에서 이뤄지는 성미산 마을의 문화공간이다. / 이다일기자

성미산 마을극장/ 넓은 단독주택이 있던 터에 시민단체와 함께 건물을 세웠다. 그리고 지하에는 마을극장을 만들었다. 성미산 마을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동네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연도 펼쳐진다. 또한 마을의 중요한 회의도 이곳에서 이뤄지는 성미산 마을의 문화공간이다. / 이다일기자

공동 출자/ 성미산 마을에서 하는 어린이집과 학교를 포함한 모든 사업들은 주민들이 직접 출자해서 이뤄진다. 동네 사랑방 까페 '작은 나무'에 들어서면 출자자들의 이름이 벽에 빼곡하게 적혀있다. 이들은 1년마다 돌아가면서 운영위원을 하며 까페에 자원봉사도 하고 직접 살림을 챙기기도 한다. 성미산 마을의 모든 공동체가 이같은 형태로 운영된다. / 이다일기자

공동 출자/ 성미산 마을에서 하는 어린이집과 학교를 포함한 모든 사업들은 주민들이 직접 출자해서 이뤄진다. 동네 사랑방 까페 '작은 나무'에 들어서면 출자자들의 이름이 벽에 빼곡하게 적혀있다. 이들은 1년마다 돌아가면서 운영위원을 하며 까페에 자원봉사도 하고 직접 살림을 챙기기도 한다. 성미산 마을의 모든 공동체가 이같은 형태로 운영된다. / 이다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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