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세습체제 유지, 여맹·청년동맹 역할 크다”

2010.11.12 18:53 입력 2010.11.16 10:50 수정
한윤정 기자

이온죽 교수와 이인정 연구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출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 세습으로 체제유지의 비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의 심각한 경제난,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도 비교적 안정된 체제를 지켜왔다. 이온죽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명예교수(66)와 제자인 이인정 한국교원대 특별연구원(38)은 조선노동당과 인민군 중심의 지도 이념을 주민들의 생활 속으로 전파하는 사회조직의 역할에 주목한다. 두 연구자는 최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과 조선민주녀성동맹>(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란 책을 펴냈다.

사회변화에 민감한 북한의 여성, 청년 조직을 함께 연구한 이온죽 교수(왼쪽)와 이인정 연구원. | 김세구 선임기자

사회변화에 민감한 북한의 여성, 청년 조직을 함께 연구한 이온죽 교수(왼쪽)와 이인정 연구원. | 김세구 선임기자

“보통 북한연구는 노동당과 인민군 중심의 정치·제도적 측면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정치나 제도만으로 체제가 그렇게 공고하게 유지될 수는 없어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배이념을 인민에게 전파하는 ‘인전대(引傳帶·transmission belt)’라고 불리는 조직의 역할이 중요합니다.”(이온죽)

북한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하 청년동맹), 조선민주녀성동맹(이하 여맹), 조선직업총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등 4개 사회조직에 주민들을 의무적으로 가입시키고 있다. 이온죽 교수는 그중에서도 사회변동에 민감한 여성과 청년 대상의 조직인 여맹과 청년동맹의 역할에 주목한다. 1세대 북한학자인 그는 북한의 여성·가족·일상생활 등 질적 연구에서 많은 업적을 쌓았다.

“북한은 건국 초기부터 여성 노동력 동원을 위해 남녀평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봉건적 의무를 강요했기 때문에 이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이었지요. 1970년대 초반부터 노동력이 남아돌면서 여성을 집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여맹의 역할이 강화됩니다. 우리로 치면 반상회 방식으로 조직된 여맹은 80년대 김정일의 의붓어머니인 김성애의 영향력 아래 500만명까지 커졌다가 김정일 집권 이후 4분의 1 규모로 줄어들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에 다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시기는 식량배급이 끊기면서 주민들의 이동과 탈북이 늘어나고 당의 통제력이 약화된다. 여성들의 경우에도 생계 유지에 급급해 사상적 이완과 조직 이탈이 가속된다. 이때 여맹은 남한의 종교조직처럼 상호부조를 통해 가계붕괴를 막고 경공업이나 산림개간 등 최소 경제단위로 작동하면서 힘을 얻는다. ‘유급일꾼’인 기초 여맹위원장들은 ‘믿음과 사랑으로 포용하고 심금을 울리며 교양한다’.

청년동맹의 경우 여맹과는 성격이 다르다. 여맹이 생활에 기초한 조직이라면, 청년동맹은 엘리트 당원을 키워내는 조직이다. 여기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90년대를 지나면서 ‘부르죠아 자유화 바람’ ‘날나리풍’이 나타나고, 조직원의 장래희망 역시 당 정치국 입문에서 상업으로, 다시 외국어 전문가로 바뀐다. 이에 따라 청년동맹은 출신성분이 좋은 청년들의 사상 단속에 집중하게 된다.

이인정 연구원은 “1983년에서 2007년 사이에 나온 ‘로동신문’과 여맹 기관지인 ‘조선녀성’, 청년동맹 기관지 ‘로동청년’(96년 이후 ‘청년전위’) 등을 시기별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변화를 연구했다”면서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펠레통’(비판기사를 가리키는 프랑스어)을 금지하는 매체의 성격 때문에 행간을 읽는 연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가령 ‘총화(모임)에 빠지고 물질에 물든 나를 반성한다’는 기사에서 조직의 와해, 경제적 관심을 읽어내는 식이다.

“여맹의 변화에는 경제난이 많은 영향을 준 데 비해 청년층의 경우 89년에 열린 평양축전이나 부분적인 개혁개방조치가 중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90년대 초반부터 돈과 물질에 대한 관심, 절도나 패싸움 등과 관련된 언급이 나오기 시작해요.”(이인정)

이번 연구는 여맹의 경우 2007년까지의 자료가 동원됐으나 청년동맹은 자료입수의 한계로 인해 98년까지만 참고했다. 따라서 경제난 이후 청년층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와 관련, 이 연구원은 “청년층의 물질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 성향이 계속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권을 유지하는 엘리트 공급 조직으로서 청년동맹의 위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 역시 “3대 세습을 감행할 만큼 핵심 권력층의 충성 유지에는 자신감이 있다”면서 “북한의 변화나 내부 붕괴 가능성에 대해 탈북자의 증언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상황을 오판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두 연구자는 “여맹, 청년동맹 같은 북한 사회조직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처럼 주민들의 삶과 분리시킬 수 없는 존재”라면서 “조직의 운영원리를 이해함으로써 향후 탈북자 적응교육이나 남북교류, 통일이 됐을 때 북한주민의 동화과정에 활용할 수 있다”고 연구 목적을 밝혔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북한 세습체제 유지, 여맹·청년동맹 역할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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