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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들뢰즈… 대학원생도 풀기 힘든 논술”

2011.11.18 00:02
김재중·사진 서성일 기자

대치동 논술강사 정주현씨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예비 학자’를 뽑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출제되는 논술고사 문제들은 대학원생 수준의 수학능력을 요구하고 있어요.”

유명 논술강사 정주현씨(39·사진)는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정씨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빅5’ 안에 드는 창비논술학원의 논술팀장이다. 10년째 대입 논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정씨는 “(출제자인) 대학 교수들이 자기가 연구하고 있는 주제를 그대로 출제하다보니 대학·대학원 수준의 지문이 등장한다”면서 “현행 교육 체계와는 한참 괴리된 문제들이어서 공교육에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푸코·들뢰즈… 대학원생도 풀기 힘든 논술”

정씨는 “대입 논술은 2002~2003년부터 본고사 성격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입 본고사는 이른바 ‘3불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에 의해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논술이 사실상 이런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행 대입 논술의 문제점을 고난도의 영어지문, 구체적인 수학 지식이 있어야만 풀 수 있는 수리문항, 지문 자체의 난해함 등 세 가지로 요약했다. 정씨는 “대학 교양영어 수준 이상의 단어가 집중적으로 나오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원문이 어휘 해설 없이 실리거나, 인문계열 수리논술에서 로그함수를 미분하거나 수열을 정확히 이해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지문의 경우에도 사실상 인문계열 대학원생 정도가 읽고 고민하는 푸코의 <말과 사물>,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같은 책에서 지문을 가져온다. 기성 학계에서도 최신으로 취급받는 이론이나 한글 문법에 맞지도 않는 번역투의 복잡한 지문도 버젓이 등장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 ‘대학들이 채점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백지답안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 정도”라고 했다.

이처럼 난도가 높다보니 일선 교사들이 논술을 가르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씨는 “모 사립대는 2009~2010년 논술 문제를 2005~2006년 미국 정치학계 논문에서 가져왔다. 현직 고교 교사들이 어떻게 이런 문제를 풀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다보니 논술학원으로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정씨는 “대치동 학원가의 논술강사들은 서울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이 고대와 연대 출신이다. 소위 ‘스카이’ 출신만 골라 뽑는다”고 했다. 이어 “논술강사 중에는 서울대 등 명문대 로스쿨 학생과 박사과정 학생들도 많다”며 “지방대 교수들도 대치동에서 논술을 가르치지만 인기가 별로 없다”고 했다. 다른 과목과 달리 수험생들이 오로지 인기 강사만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대입 수시 논술시험이 한창인 요즘엔 ‘단기 알바’도 채용한다. 서울대 등의 학내게시판을 통해 철학과, 정치학과, 사학과, 국문과 학생을 임시 강사로 뽑아 쓰기도 한다. 그는 “사범대를 나와 고교에 재직해온 교사들은 현재의 논술을 지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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