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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앱’ 재미로 봤다가 되레 죽고 싶다는 생각만

2012.02.12 21:41 입력 2012.02.13 00:24 수정

진단 부정확, 공신력 떨어져

재수생 유모군(20)은 최근 ‘우울증 테스트’라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발견하고 심심풀이로 다운받아 실행해봤다. 그가 받은 점수는 32점. 앱이 정한 기준대로라면 29~50점에 드는 ‘고위험군’이었다. 유군은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남부럽지 않은 내신성적을 받고도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유군의 부모도 “누구는 내신성적이 안 좋아도 명문대에 잘만 가던데 넌 왜 그런 거냐”며 스트레스를 줬다. 유군은 “그냥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해본 테스트지만 실제 우울증 고위험군이라고 나오니 더 무기력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검증되지 않은 우울증 테스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검증되지 않은 우울증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뒤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일 부산 동래경찰서의 도움으로 자살 위험에서 벗어난 초등학생 박모양(13)과 고등학생 최모군(17)이 이 같은 사례다.

이들은 스마트폰 ‘우울증 테스트’ 앱 게시판에서 만나 동반자살을 하려다 이름과 학교명을 미리 파악해 찾아온 경찰 덕에 자살을 피했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우울증이 심해 이것저것 알아보다 우울증 테스트 앱을 발견했다”면서 “테스트 결과도 좋지 않아 동반 자살글을 게시판에 올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해당 앱 게시판에는 최군이 올린 ‘같이 자살하실 분 구해요. 진지하게 말입니다. 카카오톡 아이디 남겨요’라는 글이 그대로 남아 있다.

경향신문이 12일 스마트폰 앱에 검색어로 ‘우울’ ‘자살’을 넣자 10개가 넘는 우울증 테스트 앱이 검색됐다. 이 앱들은 전부 개인이 검증되지 않은 우울증 테스트의 일부분을 발췌해 만든 것이다. 현재 정부에서 제작한 스마트폰용 우울증·자살예방 관련 앱은 없다.

김은영 한국청소년상담원 선임연구원은 “죽고 싶은 마음이 일정 궤도에 오른 아이들에게 우울증 앱은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줄 무언가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은 잘못된 테스트를 통해 우울증 고위험도라는 결과가 나오면 아이들은 ‘이건 자살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육성필 용문상담심리대학원 교수는 “우울증이 있다고 반드시 자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데도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검증되지 않은 테스트를 통해 ‘우울증 정도가 높으니까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은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는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앱이 개발되면 오히려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에게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며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쉽게 접근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앱을 개발하면 우울증을 예방하는 쪽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이중규 과장은 “그동안 국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앱이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소홀했다”면서 “곧 문을 열 ‘중앙자살예방센터’를 통해 정부가 관리감독할 수 있고 공신력 있는 우울증 테스트 앱 등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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