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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정치다 - 심보르스카의 시

2012.02.13 19:27 입력 2012.02.13 22:51 수정
김우창 | 이화여대 석좌교수

예부터 한국인의 큰 관심사는 -개인적인 인생 문제 다음으로- 정치이다. 이제 큰 선거들이 다가오니, 정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인의 경우가 아니라도,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가 ‘시대의 자식들’이라는 시에서 “하루 내내, 밤중 내내, 모든 일은-당신의 일, 우리 일, 그들의 일은/ 모두 정치이다”라고 한 것은 오늘의 세계에 두루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태를 말한 것이고, 심보르스카 자신이 정치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말은 아니다. 이 시는 “정치가 번창하는 가운데에도, 사람들은 죽고/ 동물은 죽고, 집들은 불타고,/ 들녘은 황폐해져/ 상황은 정치적이지 않던 태곳적과 다름이 없다”는 말로 끝난다.

199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심보르스카가 지난 2월 초하루에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침공, 유태인과 폴란드인 학살, 강제 이송과 노동, 소련군 진주, 숙청과 학살, 공산정권 수립과 붕괴, 자본주의 이행 등의 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격동기가 심보르스카가 살았던 시대이다. 무력과 폭력의 대사건이 모든 것을 정치화할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에 들어선 정치체제가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나치즘이나 공산주의 체제였다는 사실도 삶의 정치화를 심화했다.

[김우창칼럼]모든 것이 정치다 - 심보르스카의 시

모든 것이 정치라면 심보르스카의 시도 당연히 정치적 내용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정치에서 멀리 있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러면서도 정치의 시대에서 정치에 대한 직접·간접의 언급은 피할 수 없다. ‘제목이 필요 없다’라는 시는 작은 것들이 삶의 내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이지만, 이것을 정치 또는 역사의 거창한 사건에 대비한다. 중요한 것은 “햇빛 밝은 아침/ 강가의 나무 밑에/ 내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중대한 사건이 아니어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동기를 따지고 연구 대상이 될/ 전투도 비밀조약도 아니고/ 전제군주를 주살한 사건도 아니다”. 그렇다고 작은 사실에 역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덧없이 지나가는 순간에도 많은 과거가 있다.” 토요일 전에는 금요일이 있고, 유월 전에는 오월이 있고, 포플러는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린 것이고, 강물은 상류로부터 내려오고, 구름은 바람에 불려 왔다가 다시 불려 간다. 정치 음모나 대관식에만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혁명기념일이 돌아오듯이, 강기슭의 자갈도 돌아든다. 개미와 풀밭과 물결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그 나름의 모양과 인과가 있다. “중요한 일은/ 중요하지 않은 일보다도 더 중요하다”-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심보르스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상에 따라 레닌에 관한 시 또는 새로운 공장을 짓는 노동자를 예찬하는 시를 썼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저항작가들과 합류했다. 그러나 발표된 시로 보건대, 그때 이미 정치보다는 개인적인 생활의 여러 뉘앙스에 인생의 현실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도 정상적인 일상생활, 어떻게 보면 부르주아적인 삶의 일상성을 그리워한 것으로 보인다. 한 고전적인 풍경화를 말하는 시에서 그는 나무와 풀 그리고 오월의 오후가 그대로 있는 광경을 묘사하고 자신을 그림 속의 흰 보넷을 쓰고 노란 치마를 입은, 바구니를 들고 가는 여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여인의 세계는 모두 해야 10㎞ 정도의 자기 주변이다. 그러나 그 범위 안에서 병에 쓸 수 있는 약초는 잘 알고 있다. 그에게는 집이 있고 고양이가 앉아 있는 의자가 있고 물주전자가 있고 남편이 있다. 세상의 선악에 대한 고민이나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지 않는 그 여인에게 모든 일은 세상이 가르치는 상투적인 문구들로 설명된다. 물론 이러한 단순한 삶은 아이러니를 가지고 그린 것이지만, 어려운 시대의 심보르스카에게 동화적인 매력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족사진’은 이것을 조금 더 현실적인 관점에서 확인한다.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조상들은 비극적인 사랑이나 정신의 고민을 알지 못하던 보통사람들이다. 이러한 조용한 삶에 대조하여 “열광적이고 거대한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에 해당되는 일일 뿐이다.

극장에서 연극을 보고난 다음의 생각을 적은 ‘연극 인상기’에서 그는 연극에서 자기에게 제일 좋은 부분은 연극이 끝난 다음, 죽었던 사람들이 가슴에 꽂혔던 칼, 목에 걸렸던 밧줄을 풀면서 일어나 청중을 향하여 인사할 때이다. 그렇다고 영웅들의 비극이 없는 보통의 삶이 고독과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비극이 끝난 다음에 무대에 흩어진 꽃이나 칼을 거두어들이는 일이 끝나면, 관중의 삶도 그렇게 불원간 거두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연극의 다른 효과이다. 사람의 일로 지속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슬픔과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풍경을 뒤로하고’에서 심보르스카는, 다시 봄이 오고, 초목에 새싹이 움트고 젊은이들이 사랑을 하고 하는 것을 기피할 이유가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지만, “그 가운데 다시 사는 것”은 사절하겠다고 말한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고통과 슬픔에 대한 위안이었다.

높은 관점에서 내려다보는 눈에 인생을 테두리하는 것은 죽음이다. 정치와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틀도 사람의 삶을 아는 데에는 너무 크고 먼 관점을 제공할 뿐이다. 공산치하에서 쓰여졌을 여러 편의 시에는, 이데올로기적 질서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삶은 우연의 연속 또는 행운과 불운의 연속이라는 것을 말하는 생각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럴 수도 있었을 일’이라는 제목의 시는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순전히 재수라고 말한다. 맨 먼저 와서 잘되는 수가 있고 맨 먼저 와서 잘못되는 수가 있고, “숲이 있어서, 다행이었을 수 있고/ 나무가 없어서 다행이었을 수가 있고”…. ‘테러리스트는 보고 있다’라는 시는 “13시20분”에 터지게 되어 있는 폭탄이 장치된 장소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을 묘사한다. 마지막 사람은 10초를 남겨 두고 일단 나왔다가 장갑을 찾으러 들어간다. 그리고 폭탄이 터진다. 다른 한편으로, 시 ‘유토피아’는 모든 것이 정연하게 정비되어 있는 세상이 사람 살 만한 곳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치계획이 지향하는 유토피아에서는 “왼편에 있는 깊은 확신의 호수에서는/ 바닥으로부터 진리가 방울져 올라온다./ 흔들리지 않는 소신이 골짜기 위로 치솟아/ 그 꼭대기에 가면 사물의 본질을 환히 내다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삶에서 발견하는 작고 아름다운 것 이외에 가치 있다는 것이 있다면, 심보르스카에게 그것은 개인의 심성 깊이에서 나오는 본능적 반응들-윤리적 의미를 가진 반응들이다. 진정한 사랑은 무상(無償)의 것이기에 값진 것이다. 자책감, 후회, 양심, 인간애, 연민 또는 동물에 대한 사랑 등은 삶의 귀중한 체험이다. ‘방주(方舟)에 실어야 할 것’이라는 시는 구출해야 할 가치로 “차이가 있다는 기쁨/ 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찬양/ 둘 중 하나만을 택하도록 줄여 놓은 것이 아닌 여러 선택/ 묵은 망설임/ 생각할 시간/ 언젠가는 이런 것들이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러한 것들을 말한다.

사람의 감정이 만들어내는 것에는 나쁜 것이면서도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 있다. ‘증오’라는 제목의 시가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증오는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 쉽다. “인간애” “연민” “고민하는 사람의 회의”-이러한 것들은 군중을 열광하게 하지 않는다. 증오는 사람을 열광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물을 타고 넘을 수 있게 한다. 증오는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그것은 한밤중 찬란한 불꽃을 만들어내고 “장밋빛 새벽에 폭발하는 거대한 폭탄”을 만들어낸다. “증오는 폐허에서 비극적 감동/ 그 가운데 솟아오른 기둥에서 잡스러운 유머”를 발견한다. 종교와 국가 그리고 정의도 그것으로 힘을 얻는다.

작은 것들이 삶의 내용이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러니는 그것들을 지탱하는 정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작은 것들의 옹호가 바로 정치를 위한 교훈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심보르스카 자신이 그것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정치가 된 우리의 시대를 생각함에도 이런 아이러니는 교훈을 가지고 있다. 심보르스카의 죽음을 기하여, 그의 시를 돌아보는 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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