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놀이운동가 편해문

2012.04.17 21:29
글 김규항

“아이의 행복한 삶 바란다면 ‘놀이’ 통해 행복의 느낌 배우게 해야”

인류역사 내내 제대로 된 사회에선 구태여 강조할 것 없이 지켜져 온 원칙이 있다. 아이들은 잘 놀아야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고 사회의 미래가 있다는 것. 오늘 한국은 그 원칙이 가장 철저하게 부서진 사회다. 진보적인 시민들은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자 정치적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온힘을 다하지만 제 아이들이 박정희 독재 시절보다 놀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한다. 편해문은 그런 희한한 어른들 덕에 일찌감치 시들어가는 아이들 걱정에 사로잡힌 놀이운동가다.

▲자본주의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는 방법이 놀이
잘 노는 것은 무엇보다 돈으로 구매하지 않고 노는 것
지배자들의 발명품인 돈 주고 사는 여가와 다르다

놀이운동가 편해문씨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행복의 냄새와 느낌을 아는데, 오늘날 아이들은 놀이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놀이운동가 편해문씨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행복의 냄새와 느낌을 아는데, 오늘날 아이들은 놀이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김규항 = ‘사람은 어릴 적 논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셨지요.

편해문 = 지금 세상이 참 견디기 어려운 세상인데, 신기하게 버티고 살아가거든요. 저런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궁리해보니 결국 그게 어릴 적 놀면서 기른 힘을 꺼내서 쓰는 거더라구요.

김규항 = 요즘은 생태놀이까지도 패스트푸드점에서 메뉴 고르듯 구매되는 세상입니다. 놀이가 놀이가 아닌 세상이랄까요.

편해문 = 오락이나 여가를 놀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가를 즐긴다는 게 주말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곳으로 몰려가고 돈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거잖아요. 사람들은 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인데 회사나 공장에서 오래 붙들려 그 본능이 눌려 있죠. 그걸 구역을 만들어가지고 놀잇감을 넣어주고는 ‘너희들 여기 와서 번 돈을 써라’ 이게 여가의 정체죠. 여가란 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발명품이죠.

김규항 = 자본주의 체제가 놀이를 왜곡하는 건 이윤을 위해서뿐 아니라 체제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잘 노는 사람들처럼 무서운 사람들은 없습니다.

편해문 = 자본주의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는 방법은 잘 노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노는 건 무엇보다 돈으로 구매하지 않고 노는 건데 우린 갈수록 그런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김규항 = 체제가 잘 노는 사람을 없애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잘 노는 게 뭔가를 바꾸는 거죠.

편해문 = 흔히 잘 노는 사람이라 하면 오락 분위기를 선도하는 사람, 탬버린 들고 던지며 사람들 휘어잡고 분위기를 압도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제 생각엔 제일 못 노는 사람이구요. 오히려 일상에서 아이들과 소소하게 놀 줄 아는 사람이 잘 노는 사람이죠.

김규항 = 요즘 한국 아이들에게 주의력결핍장애(ADHD)라는 병이 비정상적으로 많습니다. 그 역시 놀이의 왜곡과 관련이 있지 싶어요.

편해문 = ADHD라는 병이 한국처럼 많은 나라는 없거든요. 이게 유전적인 거나 음식 같은 것도 원인이지만 그건 일부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생각해볼 문제예요. 사실 아이들은 가만히 못 있는 게 정상입니다. 특히 취학 전의 아이들은 아직 사람이 아니라 짐승입니다. 소리 지르고 울고 뛰고 물어뜯고 하는 거 당연해요. 사람에겐 소리 질러야 할 절대량, 울어야 할 양, 뛰고 싶은 거 절대량이 있어요. 이걸 반드시 써야 하고 다 채워줘야 하는데 이게 눌려있다가 초등학교 가면 아이가 가만있지 못할 수밖에요. 아이들은 짐승으로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사람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걸 생략하고 바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무리가 생기는 거죠. 그래놓고선 그걸 병이라 진단하고 부작용투성이의 약을 처방하죠. 아이들에게 남은 생명의 기운을 약으로 꺾어서 어른들이 원하는 상태로 만드는 거죠.

김규항 = 어른들이 원하는 상태란 점잖고 조용한 상태가 아니라 군말 없이 공부만 하는 상태죠. 엄마들 사이에 ADHD 약이 ‘공부 잘하는 약’이라 불리기도 해요. 학교 폭력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도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인데요.

편해문 = 닭을 살찌우기 위해 닭장에 닭을 움직일 수도 없이 많이 때려 넣어놓고 24시간 불을 켜놓지 않습니까. 그 닭들은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는가. 한 닭을 여러 닭이 피가 철철 날 때까지 쪼아서 죽입니다. 학교가 그런 상황이죠.

김규항 = 학교를 그렇게 만든 원인으로 대개 보수적인 교육 관료나 정책들이 지목되는데 배경은 부모들이죠. 예를 들어 체벌 문제를 보면 부모들이 초등학생 때는 손만 대도 난리가 나요.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고 고등학교 가면 적당히 때려서라도 성적을 올려주길 원하는 부모들이 아주 많아요. 부모들의 그런 이중적인 태도가 보수적인 교육관료나 정책들에 힘을 실어주고 학교를 닭장으로 만듭니다. 게임중독에 관한 논의들도 마찬가지구요.

편해문 = 게임을 못하게 막거나 시간을 관리하는 건 사실 불가능해요. 이젠 들고 다니면서까지 하는데 그걸 어떻게 관리합니까.(웃음)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 게임을 관리하는 힘을 갖는 건데 그게 없을 때는 게임에 먹힐 수밖에요. 아이 속엔 게임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놀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공부 경쟁 때문에 노는 시간을 없애버렸죠. 드물긴 하지만 제대로 놀면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놀이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은 아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그런 아이들도 게임을 만나면 해요. 재미있으니까. 그런데 한자리 앉아서 두세 시간을 못하고 일어납니다. 좀이 쑤셔서 견디질 못하는 거죠. 그런데 놀이밥 굶은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참견만 안하면 2박3일도 갑니다. 좀이 안 쑤시거든요.

김규항 = 지금 게임이라는 게 부모들이 하던 테트리스나 갤러그하곤 다르잖아요. 게임 산업의 규모가 엄청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아이들을 자기네 게임에 얼마나 오래 앉혀놓는가가 숙제가 되었는데 그건 단순히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어선 안되고 중독을 시켜야 하는 거죠. 말씀대로 면역 능력이 중요한데 어른들은 게임의 폭력성이나 선정성만 이야기합니다.

편해문 = 게임의 진짜 해악은 폭력이나 선정성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워낙 폭력적이고 선정적이에요. 남자애들은 개미 보면 밟아죽이고 엄청 선정적이죠. 게임의 진짜 해악은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 없음’입니다. 정말 무서운 해악이죠. 게임중독은 놀이로밖에 치료할 수 없어요. 부모님들 만나면 늘 그럽니다. ‘다 소용없구요 어릴 적엔 노는 게 남는 거예요.’

김규항 = 그나마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이들 생각하는 게 전래놀이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방학 때 캠프나 행사 같은 데선 해도 일상에 연결하는 경우는 드문데요.

편해문 = 다른 세상에서 이식해오는 거니까요. 다른 사람 살을 떼다 내 몸에 붙이는 건데 자연스럽게 살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비석치기를 한다고 했을 때 비석을 문방구에서 사거나 놀이지도하는 분들이 준비해요. 그래서 다른 아이가 비석을 던져서 내 비석이 쓰러졌어, 그런데 아이가 별 느낌이 없어요. 제가 어렸을 때 내 비석이 쓰러지면 가슴이 철렁했거든요. 비석이 아니라 내가 넘어가는 거죠. 내 비석이 좋은 비석을 찾으러 온 동네를 찾아다니고 할머니 집 다녀올 때도 찾고 한 거거든요. 전래놀이 캠프에서 비석치기 마치면 다들 비석을 던져버리죠. 옛 아이들은 찬장 한 구석에 눈에 띄지 않게 넣어놓고서야 안심하고 잤거든요. 전래놀이는 놀잇감을 찾으러 다니는 것, 놀이 방법, 놀잇감에 대한 사랑,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들어있는 건데 두 번째만 쏙 빼서 전래놀이라고 하면 그건 놀이가 아니라 레크리에이션일 뿐입니다.

김규항 = 이런 현실에서 아이들이 당장 할 수 있는 놀이가 뭐가 있을까요.

편해문 = 사람들이 공동체성을 가지던 시절에는 놀이에서 서로 겨루고 경쟁하고 하는 게 문제될 게 없었는데 이젠 아이들 삶이 경쟁에 처박혀 있으니 그런 것조차 조심스러운 지경이에요. 경쟁 지수가 0이면서 재미있는 놀이로 음악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요즘 음악에 그리 빠져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무슨 음악이든 그쪽으로 물꼬를 터주면 좋을 겁니다.

김규항 =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라 놀잇감을 사주는 것도 찜찜합니다. 옛 아이들은 놀잇감을 돈으로 사지 않았죠.

편해문 = 사주는 놀잇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 아이들이 하는 놀이가 다 소비입니다. 사는 놀이, 사서 입는 놀이, 사서 쳐바르는 놀이 같은 것들이죠. 아이들이 포켓몬스터 딱지를 사는 이유도 놀기 위해서보다는 축적하기 위해서거든요. 티비에서 아이들 만화나 프로그램하면 바로 장난감 광고가 붙어요. 별 생각 없이들 보는 게 사실 상식을 가진 부모라면 당연히 규제하라고 요구해야죠.

김규항 = <고래가그랬어>가 그런 광고를 일절 안 받는 통에 고생 많이 했죠.(웃음) 어쨌거나 아이들은 그걸 갖고싶은 욕구에 시달리는데요.

편해문 = 마트 같은데 장난감 코너에서 저거 사달라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이 있어요. 정말 그거 가지고 놀고 싶어서 그러는가. 사주면 며칠 가지고 놀다 통으로 들어가요. 이미 잔뜩 쌓여있는 통에요. 아이들은 실은 사람하고, 엄마하고 아빠하고 동무하고 놀고싶은 거예요. 그게 충족이 안 되니까 그런 유행하는 장난감을 갖고싶은 욕구로 대체되는 거죠. 장난감 사달라고 울고 떼쓰면 “너하고 놀고 싶단 말이야”라는 하소연으로 생각하면 되어요.(웃음)

김규항 = 부모들 특히 아빠들은 뭘 사주는 걸로 아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봅니다.

편해문 = 아이들에게 아빠는 ‘뭘 사주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중학생 정도 되면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무 관심이 없어요. 아빠하고 눈 마주치는 유일한 시간은 뭐 사달라고 할 때뿐입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사주는 걸로 관계의 끈을 유지하려 한다면 더 이상 부모이길 포기하는 거겠죠.

김규항 = 돈으로 관계를 사려 들 게 아니라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할 기회로 받아들여야겠지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한국 아빠들은 교육에도 거의 참여 안하고 아이들과 소통할 줄도 모릅니다. 외국과 비교해도 유별난 편이죠. 근래 외국 아이들을 보러 여행을 거듭하고 있지요?

편해문 = 제가 안동에 사는데 권정생 선생이 거기 사셨어요. 그분 유언장 마지막에 북한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중동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티베트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아프리카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대목이 나옵니다. 제가 무슨 거창하게 선생의 유언을 따른다는 건 아니고 그 말씀이 깨우침이 되어 아이들을 보러 다닙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노는지.

김규항 = 가서 보니 어떻든가요.

편해문 = 김 선생님이 늘 ‘지구를 통틀어 이렇게 사는 아이들은 없다’고 하시잖아요. 아무리 다녀봐도 그렇습니다. 한국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인체 실험장 같아요. 얼마나 몰아붙여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실험요. 그렇지 않고선 이럴 순 없죠. 우리보다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곳은 없습니다. 한국이 잘 사는 나라라고들 하는데 실은 세상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죠.

김규항 = 5년 전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는 책을 내셨지요.

편해문 = 아이들이 볼까봐 그 책을 숨기고만 싶어요. 책 제목을 보고 무릎을 치고 탄성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가 하는 게 맞구나 믿음도 가질 수 있었구요.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성과는 마이너스였죠. 아이들과 놀이는 더 멀어졌어요. 다음 책은 그런 아름다운 제목이 아니라 거친 제목으로 가려구요. 어른들이 좀 불편해하더라도 날것으로 갈 생각입니다.

김규항 = 옛 어른들은 아이 키우고 교육하는 걸 ‘자식 농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말이죠.

편해문 = 농사는 정직한 거잖아요. 옛날 어른들은 아이가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어릴 때 생각해보면 오후 내내 놀고 들어와 저녁 맛있게 먹고 또 잠깐 나가 놀았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하니까 그대로 골아떨어졌구요. 아침이야 당연히 꿀맛이죠. 그런데 놀이가 딱 끊어지니 아이들은 밥 맛이 없고 잠이 잘 안 올 수밖에요.

김규항 = 우리 아이들이 놀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편해문 = 놀이는 한 번도 아이들 곁을 떠난 적이 없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감추거나 빼앗았지만 놀이는 언제나 아이들 곁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김규항 = 결국 우리 어른들의 일이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회문제로선 찬동하는데 내 아이 문제에선 망설여진다는 겁니다. 교육 강연을 하면 모인 어머님들에게 꼭 그럽니다. “동네에 돌아가면 혼자시죠?” 다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죠. 혼자라 생각하면 불안하고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아 두렵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손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편해문 = 누구나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행복의 냄새와 느낌을 알아야 해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행복의 냄새와 느낌을 알고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깨우칩니다.

김규항 = 부모들은 아이가 나중에 행복하기 위해 지금은 조금 불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행복하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도 공부니까요. 가장 중요한 행복 공부는 물론 놀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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