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인물탐구

(3) 학창시절·인간관계 - 문재인

2012.12.05 21:37

“의리 있고 인정 많은 친구, 별명 문제인”

고교 시절, 3선 개헌 항의 백지 답안지도

“중·고교 때 내 별명은 ‘문제아’였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 이렇게 적었다. 처음엔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사회에 대한 반항심과 비판의식도 생기고 고3 땐 술·담배도 하게 됐다고 했다. 고교 동기들에 따르면 이름 발음대로 ‘문제인’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문 후보는 경남중·고를 나왔다. “한강 이남 제일 학교”라고 자부하는 부산지역의 명문이다. 문 후보는 중·고교 때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고교 동기인 건축가 승효상씨는 “매월 전 학생의 전체 석차가 게시됐는데 재인이는 항상 10위권에 있었다. 100명 이상이 서울대에 가던 시절”이라고 했다.

경남중 졸업식에서 찍은 문재인 후보 사진.

경남중 졸업식에서 찍은 문재인 후보 사진.

하지만 그는 입시공부에만 집중했던 ‘범생이’(모범생의 속어) 스타일은 아니었다. 빈한하고 기댈 곳 없던 피란민의 아들로서 주류적 질서 바깥에 서 있었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동경했다.

초등학교 때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선생님 질문에 손 한번 들어본 적이 없다. 성적표에도 ‘수’가 드물었다. 월사금을 내기도 힘들었던 가난이 그를 움츠러들게 했다. 초등 6학년 때 뒤늦게 공부에 달려든 덕에 경남중에 갔지만 처음부터 기가 죽었다. 경남중에는 부유층 자제가 많았다. ‘식모’를 두고 있는 집도 많았다. 문 후보는 “노는 문화가 전혀 달랐고 용돈 씀씀이도 큰 차이가 나서 함께 어울리기가 어려웠다”며 “세상의 불공평함을 처음으로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의 삶을 관통해온 ‘비주류’ 정신은 이때부터 싹튼 셈이다.

학창 시절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사상계’ 같은 사회비평적 잡지부터 야한 소설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문 후보는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책을 통해 세상을 알고 인생을 알게 됐다. 사회의식도 키울 수 있었다.

자연히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이른바 “노는 친구들”과도 어울렸고, 축구를 좋아해 “공 차는 애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이런 ‘비주류’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 뒷산에서 술을 마시다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승효상씨는 “학교 담을 넘어 산에 가는 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거기서 술을 마시거나 혼자 생각에 잠기고들 했다”며 “재인이를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서로 씨익 웃고 지나쳤다”고 했다.

‘절박한 사정’이 있는 친구들에게 시험지를 보여주다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하고 교련시험 때 백지 답안지를 집단으로 낸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있다 보니 진짜 ‘문제아’가 된 것이다. “반항적 기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당시 우리 교육체제가 강요했던 획일적 틀이나 억압적 분위기가 안 맞았던 것 같다”는 게 문 후보 측 설명이다.

‘문제아’였다고 하지만 세상에 대한 분노를 언행으로 표현하거나 재기(才氣)를 발휘해 좌중을 압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문 후보는 “말이 별로 없는 친구”(승씨)였다. 하지만 동시에 “의리 있고, 인정 많은 친구”(최철국 전 의원)였다.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은 ‘경상도 남자’인 셈이다.

경희대 법대 재학 시절 문재인 후보와 음대 성악과에 재학 중이던 부인 김정숙씨(왼쪽부터).

경희대 법대 재학 시절 문재인 후보와 음대 성악과에 재학 중이던 부인 김정숙씨(왼쪽부터).

문 후보는 고교 때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했던 친구의 책가방을 들어주곤 했다. “소풍을 갔을 때 몸이 불편한 친구를 부축하고, 업고 산을 올랐다”(부인 김정숙씨). 성적 선두를 다투던 친구였는데 나중에 사법시험에 떨어지자 포기하고 주점을 했다고 한다. 최 전 의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재인이가 그 친구에게 사법시험에 재도전하라고 격려하면서 공부할 장소를 마련하는 등 뒷바라지를 해줬다”면서 “그 친구가 2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재인이는 전혀 생색을 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공부를 소홀히 한 탓에 재수를 했고, 다음해 경희대 법대에 들어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술값을 잘 냈기 때문이다. “부잣집 아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부산 집을 찾았다. 단칸방에 마루 하나였다. 특유의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태도는 당당했다. 그가 자주 냈던 술값은 자신을 위해 쓸 돈을 아낀 것이었다.” 대학 동기인 박종환 전 경찰종합학교장의 회고다.

문 후보는 “일부러 사람을 많이 사귀기 위해 애쓰는 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든 오래 만난 사람이든 대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성실’을 꼽았다. 중·고교 동문회에서의 평가는 인색한 편이다. 경남고 재경총동문회 간부는 “동문회와 교류가 많이 없어 문 후보를 잘 모른다”고 했다.

가족을 빼고 문 후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집단은 법무법인 부산의 동료들이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낙향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변호사 동업을 했던 문 후보는 1995년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와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했다. 문 후보는 “처음부터 시국·인권 변론을 위해 모인 뜻있는 법조인들이고, 몇 안되는 변호사들이 어려움을 함께 겪어왔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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