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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노령연금 공약, 국민은 속았다

2013.01.29 21:21
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두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재원이 부족한 탓이다. 기초노령연금은 노후복지의 핵심이지만 대상자가 많고 앞으로 늘어날 예정이어서 필요 재정 규모가 막대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20만원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은 이유도 재원을 마련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어떤가? 박 당선인이 비대위원장으로 진두지휘한 지난 총선에서 기초노령연금 인상은 새누리당 공약집에 없었다. 야권의 복지 공약을 재정을 감안하지 않은 포퓰리즘으로 공격하던 때라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방안을 내걸 수 없었다. 지킬 수 있는 것만 약속하겠다는 원칙이 적용된 셈이다.

대선은 달랐다. 대통령 선거 한달을 앞두고 대한노인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 당선인의 입에서 기초노령연금 20만원이 나왔다. 야권 단일화 움직임으로 절박해진 상황에서 600만 노인표에 주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하는 공약이었다. 올해부터 바로 법을 바꿔 시행하겠다는데, 당장 한해에 7조원이 더 소요된다. 현재 가격으로 단순 계산해도 임기 5년 동안 35조원이 필요하고 노인 절대 수가 증가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 금액도 부족할 텐데, 공약집에는 총 15조원만 배정되어 있다. 이 금액 차이는 도대체 무엇인가?

[경향논단]기초노령연금 공약, 국민은 속았다

처음에는 국민연금 보험료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민연금의 재정 불안을 심화시킨다는 비판과 논란이 이어졌다. 인수위가 이 방안을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박 당선인이 기초노령연금 재원은 세금으로 충당하겠다고 입장을 밝혀 이 논란은 일단락된 듯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제 인수위 토론회에서 박 당선인이 기초노령연금 공약의 내용을 직접 설명하면서 마침내 그 실체가 드러났다. 20만원 금액 기준은 지키되 국민연금 수령자에게는 차등지급하겠다는 게 기본 골자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급여 계산에는 가입자 개인의 소득에 연동된 ‘비례 급여’ 몫과 가입자 전체의 평균소득에 연동된 ‘균등 급여’ 몫이 절반씩 포함된다. 다소 복잡한 산식이지만 후자인 균등 급여는 하후상박 원리로 국민연금을 지급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는 분명 국민연금법에 명시된 급여이기에 당연히 기초노령연금과 별개의 제도이다. 그런데 박 당선인이 돌연 국민연금의 균등 급여 몫이 바로 기초연금이라는 논리를 내놓았다. 국민연금 안에 기초연금에 해당하는 균등 급여가 이미 존재하고 이 금액을 20만원 채워주는 게 기초노령연금 공약의 의미란다.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인에게만 기초노령연금 20만원을 온전히 주고 국민연금 수령자에게는 균등 급여 몫만큼 빼고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설계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이 나오겠지만, 이럴 경우 현재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들은 기초노령연금을 삭감당하거나 아예 못받게 된다.

이는 재벌회장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논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심각한 공약 수정이다.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노인들이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대상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70대 이상 노인의 경우 국민연금 수령자가 많지 않다. 반면 60대는 국민연금 수령자가 거의 절반에 육박하고 앞으로 50대 이하는 더 많은 사람이 국민연금을 받을 것이다. 이들 신규 수령자는 지금 노인에 비해 가입기간이 긴 까닭에 균등 급여로 받는 금액도 많아 대부분이 기초노령연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국민연금 수령자와 연금액이 늘어남에 따라 결국 기초노령연금은 비중이 줄면서 저소득계층 노인에게만 지급되는 공공부조제도로 귀결될 것이다.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이름까지 바꾸며 보편연금으로 만들겠다던 공약의 실체가 ‘기초노령연금의 공공부조화’였다니! 이는 선별복지 세력에게는 오래전부터 주창하던 지론일 수 있으나 국민에게는 심각한 공약 수정이다. 정말 이러다간 선거도 다시 해야 한다는 원성이 나올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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