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우리 음식에 얽힌 역사·일화·문화를 사진과 함께 소개한 ‘맛의 나침반’

2013.02.15 19:34 입력 2013.02.16 04:00 수정

▲ 음식강산 1·2…박정배 지음 | 한길사 | 1권 424쪽, 2권 392쪽 | 각 1만8000원

독일의 이 ‘점쟁이’는 지난 월드컵에서 ‘저주’의 대명사 펠레를 문어만도 못한 황제로 추락시켰다. 확률의 문제지만 예상은 적중했고, 전 세계인의 시선을 끌었다. 실제로 축구팀의 실력을 분석하고 승패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문어는 연체동물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책과 삶]우리 음식에 얽힌 역사·일화·문화를 사진과 함께 소개한 ‘맛의 나침반’

기이하게 생긴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글의 생선’(文魚)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문어는 비상한 머리와 바위 속에 숨는 은둔적 성격이 선비를 닮았다고 한다. 문어의 먹물은 글 쓸 때 먹을 대신했다. 특히 강력한 빨판은 과거 급제를 뜻했으리라.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다.

안동·영주 등 양반문화가 꽃을 피운 경북 내륙지방은 문어의 최고 소비처로, 문어가 잔치와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다. 음식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동해안을 훑으며 다양한 문어잡이 방법, 늦은 밤 죽변항에서 문어숙회를 맛본 소감 등을 전하며 문어와 함께 순박하게 살아가는 어민들의 삶을 엿본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맛깔스러운 나침반을 따라 작지만 풍요로운 우리 강산을 누빈 ‘식행(食行)’이다. 저자는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는 이웃한 대륙 중국이나 섬나라 일본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다에는 한대와 온대의 다양한 어종이 모여들고, 산이 많아 나물과 버섯이 지천에 깔려 있고, 강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줄 물고기들이 찾아와 수많은 음식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단순한 맛집 탐방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즐겨왔던 음식이 어떻게 우리 삶과 함께했는지를 살핀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는 걸 말하기 위함일까. 음식물에 얽힌 일화 등 역사부터 시작해 각 지역의 생활상을 좇으며 지역 명산물이 된 연유와 먹어본 느낌 등을 수백 컷의 사진을 곁들여 설명한다.

경상도에 문어가 있으면 전라도엔 홍어가 있다. 홍어 하면 자연스레 ‘식객’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오르게 마련. 김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별미로 꼽힌다.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후 영국에 머물 때에도 흑산홍어를 맛봤다. 재임 시절 “목포에서 잡히는 홍어는 모두 청와대로 간다”는 뜬금없는 소문이 돌았으며 일각에선 홍어를 ‘정치 생선’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책은 실학자 정약전으로 홍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약전은 유배지 흑산도에서 쓴 해양박물지 <자산어보>에서 “검붉은 색을 띠고 있다.… 꼬리는 돼지 꼬리처럼 생겼고 … 회·구이·국·포에 모두 적합하다.…”라며 홍어의 생김새와 습성, 요리와 그 효과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수십년간 홍어를 먹어왔지만 아직도 정체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게 홍어는 “맛으로 먹는 음식인지, 냄새로 먹는 음식인지, 아니면 묵은지와 돼지고기와 탁주와 함께 먹어야 하는 음식인지 매번 고민되고 실체가 잡히지 않”는 음식이다. 또한 곰삭은 묵은지는 “입안에서 벌어지는 ‘그로테스크한 맛’을 정화시키는 것”이자 “홍어로 어지러운 입안의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만드는” 존재다. 그래서 “여타 재료들의 맛을 극대화시켜주는 이타적 음식이자 어울려야 제맛을 내는 공존의 음식”이라는 게 저자의 ‘홍어론’이다. 암놈보다 크기가 작고 거센 데다 작고 긴 두 개의 생식기를 가진 수놈 홍어는 저자 눈에 ‘루저’의 표상으로 비친다.

<음식강산>은 모두 5권으로 완성될 예정인데 1권에서는 문어와 홍어를 포함해 가을의 전령사 전어, 다시 왕의 밥상에 오른 도루묵, 겨울 미식의 대명사 과메기 등 모두 11종의 귀한 바다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번에 함께 나온 2권에서는 한국 소면문화의 살아있는 역사 구포국수부터 시작해 돼지고기와 몸국의 국물문화가 만들어낸 제주 고기국수, 대구의 유명한 할매칼국수, 봄날의 노곤함을 날려버리는 막국수, 폭염도 잊게 하는 여름 별미의 황제 콩국수, 실향의 음식인 함흥·평양냉면에 이르기까지 사연이 깊고 다양한 한국의 국수문화를 얘기한다.

음식은 곧 자화상이라는 메시지가 버무려져 있다. “우리의 음식문화는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향해 변화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복합체다.” 교양서적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무엇보다 공연히 입안에 침이 돌고, 오감을 자극해 배낭을 메게끔 하는 맛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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