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원정출산’ 등떠밀리는 산모들

2014.10.14 16:20 입력 2014.10.14 16:47 수정
헬스경향 김성지 기자

산모 10.8% 타지서 분만…작년 한해만 2만명 ‘원정출산’

분만산부인과 매년 큰폭 감소…의원급 절반은 운영안해

전문가 “붕괴된 인프라 정비가 저출산정책 최우선 과제”

최근 전남 함평에서 광주로 원정출산을 떠나던 도중 고속도로를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출산한 산모가 있었다. 전남 화순과 보성 등에서도 광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 출산한 사례가 있다. 모두 지역에 분만산부인과가 없어서 발생한 일이었다.

‘원정출산’ 하면 자녀에게 해외국적을 주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방에 거주하는 산모들은 집 근처에 분만산부인과가 없어 수도권에 있는 병원으로 원정출산을 떠나고 있다.

‘대도시 원정출산’ 등떠밀리는 산모들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저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출산율은 1.2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4명보다 훨씬 적다.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기를 낳고 싶어도 분만병원이 부족한 현실이 더 큰 문제다. 실제로 분만실이나 분만전문의사, 분만 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이 없어 국내 산모의 10.8%는 다른 지역의 병원을 이용하고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과 통계청의 출생신고건수와 실제 분만수를 비교해보니 경기도는 지난 한 해 1만여명이 다른 지역으로 출산을 떠났다. 전남은 1829명, 충남은 2009명, 충북은 378명, 경남과 경북은 각각 1957명, 1700명이었다. 일 년 동안 전국에서 2만여명의 산모가 아이를 낳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난 셈이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분만산부인과는 2007년 1011곳에서 2008년 938곳, 2009년 834곳, 2010년 796곳, 2011년 763곳으로 매년 감소했다. 병원급 산부인과는 큰 변동이 없지만 무엇보다 1차의료기관인 의원급의 절반 이상이 분만실을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이를 ‘분만인프라 붕괴’라고 경고했다. 결혼시기가 늦어지면서 초산연령도 덩달아 증가해 분만 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위험상황도 늘었다. 의료사고위험은 늘어난 반면 그에 따른 보상이나 수가인정체계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산부인과전공의 지원율이 몇 년째 미달사태를 겪으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전문인력이 줄어드는 것도 분만산부인과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향후 10년 내 산부인과의사 부족현상으로 대단히 큰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돼 국가가 관심을 갖고 산부인과 지원책을 마련해야한다”며 “지역별로 산부인과 의료서비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분석해 거주지역 내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연구위원은 “취약지역에 산부인과·소아과를 겸하는 국공립병·의원을 설치하는 등 아이를 낳을 인프라를 갖춰야한다”며 “출산지원금도 1인당 금액을 무조건 올릴 것이 아니라 진료비 실태를 파악하고 개인의 소득수준에 맞춰 차등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출산정책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정책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출산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2012~2013년의 지역별 분만현황자료만 갖고 있었으며 원정출산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관련 자료조차 내부검토용일 뿐이었다. 복지부는 통계청자료에 따라 각 지역별로 출생신고건수와 관내 분만건수를 비교해 그 차이를 원정분만으로 보고 있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으로 1년에 3~4곳의 분만병원을 설치해 원정출산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다”며 “산모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출산지역을 조사할 수 없어 원정출산통계를 내는 것에 한계는 있지만 분만취약지 순회진료를 통해 산모들을 찾아가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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