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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시장통에서 ‘맛의 절경’을 즐기다… 재래시장 맛집 탐험

2014.10.15 21:29 입력 2014.10.15 21:42 수정

비주얼에 맛에 두 번 놀라는 ‘꽁치김밥’

서울 ‘김떡순’, 물 건너가니 ‘모닥치기’

뭍과는 같은 듯 다른 이색 ‘미식’ 즐비

육지에서 맛보기 힘든 향토 음식은 당연한 거고, 제주까지 왔는데 회와 흑돼지를 빼놓긴 왠지 아쉽다. 입소문 난 맛집이라고 검색해 찾아갔지만 늘어선 관광객 틈에서 짐짝 취급받기도 싫다. 게다가 ‘살 떨리는’ 물가는 또 어떤가. 먹는 게 남는 거라지만, 타향의 정취에 취해 잠시 ‘정신줄’ 놓고 있다 보면 즐거운 맛 체험보다는 불쾌함만 안고 돌아오기 쉬운 곳이 관광의 메카 제주도다.

오늘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뒤지며 고민하는 여행자들. 싸고 푸짐하고 현지의 따뜻한 인심까지 맛볼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갈등하는 그들을 위한 묘책이 있다. 바로 재래시장이다. 지역민들의 삶과 애환, 웃음과 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재래시장에서 주머니 가볍고 발걸음 무거운 여행자들의 기를 팍팍 살려줄 미식투어를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구운 꽁치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가있는 매일올레시장의 ‘꽁치김밥’

구운 꽁치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가있는 매일올레시장의 ‘꽁치김밥’

제주 시장통에서 ‘맛의 절경’을 즐기다… 재래시장 맛집 탐험

■ 제주색 물씬

제주에서 가장 큰 동문시장에선 꿩고기를 맛볼 수 있다. 동문시장 내 중앙로 상점가 골목시장에 자리잡은 골목식당을 찾는 지역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곳에서 파는 꿩메밀국수 때문이다. 메밀만을 100% 사용해 반죽한 면발은 새끼손가락 굵기지만 뭉툭하게 툭툭 끊어진다. 쌉쌀하면서도 담백한 메밀맛이 꿩으로 낸 진하고 구수한 육수와 어우러진다. 값은 6000원. 꿩 구이와 꿩 탕도 있다.

멜국, 각재기국, 장대국. 이름만 들어선 감이 잡히지 않는 음식들이다. 국문화가 발달한 제주에서는 타지역에서 국거리로 사용하지 않는 생선을 이용해 다양한 국을 끓인다. 멜은 멸치, 각재기는 전갱이, 장대는 양태를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시장 내 향토음식을 파는 식당들에서도 이 국들을 먹을 수 있지만 동문시장과 서문시장 사이에 있는 정성듬뿍제주국은 지역민들 사이에 특히 이름난 곳이다.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값은 7000원.

오메기떡은 제주를 대표하는 간식거리다. 찹쌀과 차조, 쑥을 반죽해 팥소를 넣고 겉에는 통팥이나 견과류를 버무린다. 떡은 한 팩에 6000~9000원. 빙떡은 메밀반죽을 둥글게 지져낸 위에 무채볶음을 얹어 싸먹는다. 동문시장 입구 중 ‘동문공설야시장’이라고 간판이 쓰인 쪽에는 빙떡과 호떡을 부치는 포장마차가 여러개 있다. 웬만한 5일장에선 빙떡을 지져내는 할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매일올레시장의 명물로 꼽히는 것은 꽁치김밥과 모닥치기다. 주차장 입구와 마주보는 우정회센터에서 꽁치김밥을 판다. 한줄에 4000원짜리인 꽁치김밥을 받아들면 일단 그 모양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김밥 ‘꼬다리’ 밖으로 꽁치 대가리와 꼬리가 쑥 삐져 나와있다. 한 조각 집어 들면 뼈를 발라낸 꽁치 몸통이 꽉 들어차 있다. 희한하게 비린내가 안 나고 담백하다. 모두 합쳤다는 뜻의 모닥치기는 새로나 분식이 원조다. 김밥과 김치전, 만두, 떡볶이, 삶은 계란을 한데 넣고 떡볶이 국물을 두른 것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줄이 끊이지 않는다. 5000~7000원. 제주 동문시장 사랑분식은 모닥치기라는 이름 대신 ‘사랑식’이라는 이름을 쓴다. 떡볶이에 김밥과 계란, 만두를 섞은 것으로 1인분이 3500원이다.

‘꽁치김밥’의 단면.

‘꽁치김밥’의 단면.

매일올레시장 새로나분식의 ‘모닥치기’.

매일올레시장 새로나분식의 ‘모닥치기’.

■ 서민냄새 풀풀

순대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맛볼 수 있는 흔한 음식이지만 제주사람들에게 순대는 각별하다. 잔치 때마다 돼지를 잡았고 창자까지 버리지 않고 순대를 만들었다. 쌀이 귀한 척박한 땅이라 비싼 쌀 대신 메밀가루와 보릿가루, 선지 등으로 속을 채운 것이 제주식 순대다. 그렇지만 요즘은 대체로 찹쌀을 많이 쓰는 편이다. 찹쌀 외에도 다른 곡물과 야채, 선지를 두둑이 넣어 속을 만든다. 50년째 대를 이어오는 동문시장의 광명식당은 외지인들이 제주 순대하면 떠올릴 만큼 널리 알려진 집이다. 그렇지만 제주 현지인들은 제주시 이도동 보성시장 순대골목을 먼저 꼽는다. “찹쌀, 멥쌀, 옥수수, 메밀, 양파, 대파 등 13가지 재료가 들어갔다”는 현경식당 순댓국은 시원한 국물에 순대의 쫄깃한 식감이 좋다. 감초식당은 허영만의 <식객>에 소개돼 유명세를 탔다. 동문시장의 동문시장칼국수는 50년간 사랑을 받아온 맛집이다. 멸치를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끓여낸 투박한 칼국수(4000원) 면발이 입에 감겨오며 감칠맛이 난다.

매일올레시장 금복식당은 늘 발디딜 틈 없이 붐비는 곳이다. 대부분 현지인들이다. 비빔밥과 보리밥이 모두 3000원. 튀김집 불로초장터의 학꽁치 튀김, 고추튀김도 맛있다. 제주 서남단 모슬포 중앙시장 엄마손식당은 여행지에서 집밥을 먹는 푸근함을 맛볼 수 있는 소박한 곳이다.

한마리를 튀겨도 제법 묵직하고 양이 많은 통닭튀김은 현지에서 사랑받는 메뉴다. 매일올레시장 중앙통닭, 한라통닭, 싱싱통닭 등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맛있는 통닭집을 알려달라고 하자 한 시장 상인은 “통닭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다 맛있어. 줄 서는 집은 누가 인터넷에 올렸겠지”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동문시장 골목식당의 ‘꿩메밀국수’.

동문시장 골목식당의 ‘꿩메밀국수’.

정성듬뿍제주국의 ‘각재기국’.

정성듬뿍제주국의 ‘각재기국’.

■ 회·흑돼지도 싸게 먹는다

제주도 내에 유명 횟집, 흑돼지 전문점이 많지만 가장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은 재래시장이다. 동문시장에는 대규모 수산물코너가 있다. 일반적인 수산시장처럼 회를 떠서 포장해가거나 인근 초장집에서 먹을 수 있다. 매일올레시장도 마찬가지다.

마라도와 가파도 여행객들을 태우고 내리는 모슬포항에는 최남단모슬포토요시장이 있다.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는 횟집 주인들은 대부분 직접 배를 몰고 나가 잡아온 생선으로 회를 뜨고 요리를 한다.

제주시 용담동 서문시장은 고깃집들이 모여 있다. 횟집과 마찬가지로 정육점에서 고기를 산 뒤 인근 식당에서 약간의 자릿값을 내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일반 식당에서 흑돼지구이 1인분(200g)에 1만8000원 안팎이지만 이곳에선 흑돼지 오겹살 1근(600g)을 1만5000원에 판다.

두툼하게 썰어 구워 먹는 ‘제주 흑돼지’.

두툼하게 썰어 구워 먹는 ‘제주 흑돼지’.

■ 주전부리 쇼핑

각종 간식거리나 선물용 과자류, 과일 등도 다양하다. 귤,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애플망고, 황금향 등 제주특산 과일 중 요즘은 황금향이 제철이다. 한때는 선물용 과자의 대명사로 백년초, 녹차, 감귤 등 제주 농산물로 만든 초콜릿이 꼽혔지만 요즘은 각양각색의 제품들이 나와 있다. 말린 과일, 양갱, 크런치, 곡물바, 쿠키, 파이, 꿀떡, 젤리 등이다. 제주식 한과 귤향과즐도 인기가 높다. 감귤즙으로 반죽해 튀긴 과자에 쌀튀밥을 묻혀냈다. 값은 6000원.

▲ 제주 돼지가 똥을 먹게 된 사연

사려니힐링펜션 전경.

사려니힐링펜션 전경.

제주사람들에게 돼지는 일종의 솔푸드다. 마을마다 잔치는 돼지를 잡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통적으로 제주 농가는 집집마다 ‘돗통시’(흔히 말하는 똥돼지)를 키웠다. 이는 제주의 지질과도 연관이 있다. 육지와 달리 투수가 잘되는 지형이었기 때문에 고체형 거름이 필요했고, ‘돗통’(화장실)에서 인분 등을 먹으며 자란 돼지를 통해 농사에 필요한 고체거름을 얻을 수 있었다.

쫄깃한 맛이 일품인 제주 흑돼지는 미식가들에게 사랑받는 식재료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제주산 흑돼지 중 가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도 있다. 서귀포 남원읍에 자리잡은 길갈축산은 제주 최대 규모의 흑돼지 사육업체다. 제주의 이름난 흑돼지 전문점들이 “우린 길갈축산 고기만 쓴다”고 하면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정도다. 신라호텔, 제주신라호텔, 그랜드 호텔, 현대백화점 등에도 납품한다. 길갈축산이 운영하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사려니 힐링펜션’에선 농장에서 생산된 흑돼지로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다. (064)783-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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