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야 보인다, 한 폭의 진경… 겨울에 보는 도담삼봉

2015.01.21 21:34 입력 2015.01.21 22:19 수정
단양 | 글 최병준 선임기자·사진 정지윤 기자

첫 번째 20대로 보이는 커플. “이게 전부인가 봐.” 셀카봉을 꺼내 인증샷 한 장. 두 번째 가족을 데리고 온 40대 여성. “이리 와 봐, 도담삼봉이나 찍고 가자.” 세 번째 혼자 온 30대 남자. DSLR 카메라로 도담삼봉 찰칵. 대부분 비슷했다. 겨울 휴가철이지만 평일이어선지 주차장은 많이 비어 있었다. 관광객들은 사진 몇 장 찍고 돌아갔다. 체류 시간은 짧으면 5분. 30분을 넘긴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말까지 끌고 나와 손님을 기다리던 사진사는 셀카봉 여행자들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충북 단양 도담삼봉은 누구나 아는 명승이다. 국제공항에도 도담삼봉 사진이 걸려 있고, 한국을 소개하는 관광책자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겨울 여행 어디 가지?”라고 물으면 “도담삼봉!”이라고 선뜻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도담삼봉. 얼어붙은 남한강 위에 도담삼봉이 솟아 있다. 예년에 비해 얼음이 얇아 들어갈 수는 없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도담삼봉. 얼어붙은 남한강 위에 도담삼봉이 솟아 있다. 예년에 비해 얼음이 얇아 들어갈 수는 없다.

여행자의 취향이 변할 걸까, 아니면 도담삼봉이 변한 걸까. 퇴계 이황은 도담삼봉의 풍경에 감탄해 시를 썼고, 단원 김홍도는 그림을 남겼다. 한국 사람만 감탄했나? 1897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을 여러 번 여행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이렇게 썼다. ‘한강의 아름다움은 도담에서 절정을 이룬다. 낮게 깔린 강변과 우뚝 솟은 석회 절벽, 그 사이의 푸른 언덕배기에 서 있는 처마가 낮고 지붕이 갈색인 집들이 그림처럼 도열해 있는데 이곳은 내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비숍 여행 후 118년 뒤인 2015년 1월 도담삼봉 앞에 선 십대 소년은 “강 위에 큰 바위가 세 개뿐이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왜 그럴까? 요즘 많은 여행자들이 풍경 밖에서 풍경을 보고 간다. 단양 토박이 이기만씨(64) 말이다. “옛날에 포플라 나무 길을 따라 단양에서 사람들이 이곳까지 버스를 타고 들어왔어요. 길이 좁아서 버스를 돌리기에도 애를 먹었죠. 여기서 하루 종일 놀았죠. 도담삼봉 건너편 강둑이 다 모래밭이었거든. 옛날에는 연인들이 뱃놀이도 했습니다.”

그랬다. 구불구불 강줄기를 거슬러 찾아온 과거의 여행자들은 첫 장면부터 클라이맥스를 보지 않았다. 군데군데 석벽과 강섶의 마을마다 눈길을 주면서 천천히 여행했다. 단양 읍내부터 현재 뚫린 도로로 5㎞ 정도 거리. 털털거리는 시외버스나 관광버스로 들어왔다. 그 이전에는 배를 타고 오든지 걸어서 와야 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풍경에 스며들었다. 소담한 강마을, 우람한 절벽, 바위틈의 노송…. 눈길 가는 게 많았다. 삼봉도 앞면 옆면 구석구석 봤을 것이다. 뱃놀이를 하는 연인들을 보고 아낙네들은 부러워했고, 강섶의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놀이를 했다. 사람들이 풍경이 됐다.

퇴계, 단원, 비숍이 여행했을 때는 감동이 더 컸을 것이다. 비숍이 여행하던 때 조선의 도로는 엉망이었다. 비숍이 “도심지의 대로도 승마장의 트랙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썼을 정도다. 뱃길로 여행하는 것이 안전하고 편했다. 남한강이 경부고속도로였다. 한강 구석구석을 다 훑고 올라온 여행자들은 한 두 달 뒤에야 도담을 만났다. 수위에 따라 높이가 다르지만 삼봉의 높이는 20~30m다. 배 위에서 맞닥뜨린 강바닥 위에 솟은 바위 봉우리에 비숍은 감탄했다.

역동 우탁이 머물렀다는 사인암. 단양팔경 중 하나다.

역동 우탁이 머물렀다는 사인암. 단양팔경 중 하나다.

지금은 어떤가. 중앙고속도로 북단양 IC를 빠져나와 10분이면 도담삼봉이 나타난다. 어떤 이는 지나쳤다가 되돌아온다. 주차장에서 내리면 도담삼봉이 코앞이다. 주변 풍광도 조금 변했다. 1978년 충주댐 공사가 시작되고, 1985년 댐이 완공되면서 마을은 사라졌다. 주차장이 바로 마을이 있던 자리란다. 삼봉 너머의 은모래밭도 지금은 없다. 게다가 도담삼봉 옆으로 새 도로를 놓느라고 어수선하다. 도담삼봉의 사진은 여전히 영화 포스터만큼 강렬하지만, 옛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정취를 느끼기 힘든 것이다.

도담삼봉을 보고 “크지 않다”는 아이도 있었다. 대도시에는 30~40층 주상복합 아파트도 흔하다. 20층에 사는 아이라면 도담삼봉 두 배 이상의 높은 집에서 매일 세상을 내려다볼 것이다. 제2롯데월드는 완공되면 123층 555m다. 대형 쇼핑몰은 운동장만큼 크다.

기 드보르는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현대적 생산 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삶은 스펙터클의 거대한 축적물로 나타난다. 매개 없이 직접 경험했던 모든 것이 표상 속으로 멀어진다”고 썼다. 스펙터클한 도시에 익숙해진 아이에겐 자연 풍경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겠다. 옛사람들이 붙여 놓은 팔경이니, 십경이니 하는 풍광들에 사람들은 쉽게 감동하지 않는 데에는 규모에 중독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연 풍경도 상품처럼 소비한다. 자연을 찬찬히 요모조모 뜯어보지 않는다. 그냥 사진 찍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기 위해 풍경을 수집한다. ‘풍경 수집가’에게는 어디든 예쁘게 찰칵, 사진만 잘 나오면 OK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발 좋은 ‘포인트’만 보고 간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세계 곳곳의 스펙터클을 손바닥 위로 불러올 수 있다. 이제 스펙터클마저 흔해졌다.

사인암에는 조선의 문인들이 새겨놓은<br />이름이 많다.

사인암에는 조선의 문인들이 새겨놓은
이름이 많다.

이틀 동안 삼봉을 봤다. 남한강 강둑에서, 이향정이란 정자에서, 산 중턱까지 올라가서 봤다.

김홍도의 도담삼봉도는 강에서 올려다 본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김홍도 역시 산에 올라 삼봉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모양이다. 눈높이가 다르면 풍경도 달리 보인다. 흐린 날 본 풍경과 맑은 날 본 풍경도 사뭇 다르다. 잿빛 하늘이 걷히고 햇살이 들어오니 얼어붙은 강바닥이 반짝였다. 얼음이 단단하게 얼면 주민들은 삼봉 건너편 강마을까지 건너다녔다고 한다. 강바닥에 사람이라도 있으면 더 정겨울 텐데 올해는 추위가 예전 같지 않아 얼음이 얇다. 강에 들어가면 위험하다.

자연은 여행자가 풍경 속에 들어 있을 때 아름답다. 도담삼봉도 그렇다. 찬찬히 뜯어봐야 한다.

▲ 단양 길잡이

■ 맛집대교식당(043-423-4005)은 올갱이해장국과 올갱이부침개를 잘한다. 대개 맛집은 택시 기사들이 잘 아는데 택시 기사들이 알려준 집이다. 올갱이해장국은 8000원, 올갱이부침개는 1만5000원. 경주식당(043-423-4367, 421-0504)은 올갱이해장국과 복매운탕을 판다. 복매운탕은 8000원짜리와 2만원짜리 2가지가 있다. 8000원짜리도 괜찮다. 향미식당(043-422-7500, 422-4188)은 북단양 IC 근처에 있는 중국집인데, 지역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찹쌀 탕수육이 맛있는 집으로 소문나 있다. 탕수육은 소·중·대로 나눠 2만원, 2만5000원, 3만원.

■ 숙소단양 읍내에 대명리조트(www.daemyungtourmall.com)가 있다. 대명투어몰에 들어가면 평일에는 8만3000원, 주말(금·토)에는 15만5000원에 판매 중이다. 강변에는 모텔들이 많다.

■ 명소사인암이 도담삼봉에서 19㎞ 거리에 있다. 김홍도는 단양팔경 중 도담삼봉과 함께 사인암도 그렸다. 사인암은 ‘한 손에 막대 잡고 한 손에 가싀 쥐고…’로 시작되는 탄로가를 지은 고려 말 학자 우탁 선생이 사인재관이란 벼슬에 있을 때 휴양해서 사인암이란 이름이 붙었다. 청동빛과 붉은빛이 도는 바위 절벽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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