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저널리즘’ 스크린 너머 뉴스가 이젠 “손에 잡힐 듯”

2015.04.28 10:29 입력 2015.04.28 10:36 수정
오스틴(미국 텍사스) | 글·사진 김명일 기자

엠블리매틱 그룹이 제작한 가상현실 뉴스 ‘프로젝트 시리아’ 앰블리매틱 제공

엠블리매틱 그룹이 제작한 가상현실 뉴스 ‘프로젝트 시리아’ 앰블리매틱 제공

3㎏에 달하는 육중한 기구를 머리에 쓰고 비슷한 무게의 가방을 허리에 매자 안개 자욱한 시리아의 어느 거리 풍경이 보이고 소녀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고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기고 허리를 숙일 때마다 폭풍 전야 같은 풍경이 손에 잡힐듯 다가왔다. 이내 요란한 폭탄음이 터지고 희뿌연 먼지가 사방을 뒤덮으면서 시야가 가려졌다. 쓰러져 다친 사람 옆으로 딸을 안고 다급히 현장을 빠져나가는 남자가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현장을 빠져나가려 발걸음을 옮기지만 사람들에 뒤엉켜 움직이기 쉽지 않다.

손에 잡힐 듯한 이 가상현실은 엠블리매틱그룹이 제작한 ‘프로젝트 시리아’다. 3차원 영상은 2014년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민간인 사이에 로켓포가 떨어진 현장을 그대로 재현했다. 기자가 체험해본 시리아 알레포 지역 로켓포 공격 사건, 시리아 난민 캠프 등 가상현실 저널리즘은 상상 이상으로 생생했다.

“세컨드라이프 게임을 하며 가상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했죠. 가상현실 뉴스는 당신을 바로 그 현장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프로젝트 시리아’를 제작한 노니 데라페냐 엠블리매틱 그룹 대표는 미국 언론 사이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저널리즘의 대모’라고 불린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무료급식소 앞에서 한 남성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경련하는 현장을 가상현실로 재현한 ‘로스앤젤레스의 굶주림’을 2012년 선댄스 영화제에 선보이며 ‘가상현실 저널리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지난해 제작한 ‘프로젝트 시리아’는 2014 다보스포럼에서 상연되며 내전에 고통받는 민간인의 참상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언론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쌍방향 소통과 뉴스 소비자의 뉴스 생산 참여에 이어 가상현실로 매체 전달 영역을 넓히고 있다.

가상현실 뉴스 ‘프로젝트 시리아’ 체험 모습. 머리 위 센서들과 허리에 맨 백은 대각선 사방에 세워진 타워형 센서와 반응해 체험자의 움직임을 가상현실 속에서 모두 재현해낸다.

가상현실 뉴스 ‘프로젝트 시리아’ 체험 모습. 머리 위 센서들과 허리에 맨 백은 대각선 사방에 세워진 타워형 센서와 반응해 체험자의 움직임을 가상현실 속에서 모두 재현해낸다.

지난 18일 미국 텍사스대에서 열린 16회 국제온라인저널리즘심포지엄(ISOJ)에서 ‘가상현실 저널리즘과 경험적 스토리텔링을 위한 3D 도구 활용’ 패널로 나선 데라페냐는 VR 저널리즘의 최종 목표에 대해 “직접 체험할 수 있을 때까지”라고 말했다. 1차원적 정보만을 전달하는 뉴스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감성을 가상현실을 통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시리아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문이나 TV에서는 별다른 놀라움 없이 보던 광경인) 어린이가 공격당하는 순간에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심포지엄에 참가한 한국 기자단과 만난 데라페냐는 “페이스북이 가상현실 기기 제조 업체인 오큘러스를 인수하는 등 가상현실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며 “2018년까지는 미국 내에서 약 2500만 명이 가상현실 기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고, 페이스북에도 VR 코너가 생길 것이 분명하며 가상현실 뉴스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상현실이 새로운 ‘대세 저널리즘’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가상현실 뉴스는 제작과 편집이 중요하죠. 먼저 만들어진 뉴스를 재구성하는 일이니까요. 엔지니어 5명이 이틀 정도면 완성해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6주 이상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VR 뉴스는 ‘보완재’는 될 수 있지만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용도 문제다. 심포지엄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체험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가상현실 저널리즘 체험기기 가격은 약 3만 달러(한화 3200만원 가량)다. “VR 저널리즘이 오히려 정보 부익부 빈익빈과 계층간 정보 비대칭성을 심화할 수 있다”는 기자 질문에 그는 “기술은 발달하고 있어 가상현실 체험기기도 가격이 내려갈 것이다. 지금 스마트폰도 처음에는 일반인들은 접근조차 못하는 휴대전화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모두의 기기가 됐다”고 답했다. 또 “TV든 스마트폰이든 비싼 것은 비싸지만 보급가격 제품도 많이 나왔지 않은가. 가상현실 체험기기도 저가형이 나온다면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체험장에 전시된, 사용자의 움직임은 잡지 않고 영상 움직임만을 보여주는 오큘러스 기기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한 후 종이와 플라스틱 렌즈로 된 상자에 끼워넣는 3차원 체험기기도 기대 이상으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만 원 정도 비용으로 가상현실 기기를 갖추고 VR뉴스를 접할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VR뉴스가 인체에 미치는 피해는 없겠는가”라는 질문에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 포케몬을 보고 어린이들이 발작을 일으킨 사고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VR는 포케몬 때와는 다르다. 많은 연구를 거쳤고,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된 기술이기에 부작용은 현재도 크지 않다”며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부상 위험에 비해 VR은 같은 상황을 체험하고도 확률이 훨씬 줄어드는 긍정적 면도 있다. VR 자체 부작용도 있을 수 있는데, 이 부분은 계속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VR은 ‘1차 뉴스’인 속보는 전달할 수 없다. 긴 제작 기간, 고비용에다 개발도상국 및 빈곤국가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문제는 VR뉴스 확장의 한계다. 하지만 VR이 미래 뉴스에서 중요 부분을 차지할 것은 분명해보인다. VR저널리즘에 대한 강연 패널로 나선 테일러 오언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는 “VR시대 도래에 따라 편집국도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레이 소토 가네트사 3D 연구원은 “VR는 게임 차원을 넘어섰다”며 “언론인들은 (VR을 향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뒤처져서도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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