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창조경제 복지부터 잘돼야” 장하준 교수 ‘사회안전망’ 강조

2013.08.10 06:00

“세금 더 걷어간 정부, 더 좋은 서비스 보여줘야”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를 두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사진)는 “창조, 혁신 그런 것을 잘하려면 사회적 안전망과 복지가 잘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벤처기업을 하려고 해도 한번 망해 쪽박차게 된다면 (도전)할 수 없지 않으냐”고 했다. 장 교수는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지급 등 현 정부의 복지공약 후퇴에 대해선 “(정부가) ‘잘 안되네’ 하는 식으로 국민을 설득하려 하면 안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장 교수는 한국미래학회 주최로 9일 오후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덕산미래강좌’에서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을 주제로 강연하고 토론시간을 가졌다.

그는 “지금은 복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경제성장도 힘들고 국가존립도 위협받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복지를 생산력 발전 패키지의 일부로 봐야지, 이분법적으로 ‘돈 없는데 복지 할 수 없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장기적인 복지 플랜에 대한 합의가 몇 년 안에 나와야 하고, 정권에 따라 속도조절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정권이 한 것을 다른 정권이 뒤집는 식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도) 먼저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보여주고 지금 당장은 천천히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함께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창조경제 복지부터 잘돼야” 장하준 교수 ‘사회안전망’ 강조

그는 세금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대담자인 송의영 교수(서강대 경제학과)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부자들에게 돈(세금)을 더 걷으면 ‘물이 새는 양동이’ 같은 왜곡효과가 생겨서 경제성장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질문하자 장 교수는 “선진국에서 1980년대 이후에 부자감세를 했다. 그러나 투자도 줄고, 성장률도 줄고, 실증적으로는 (그런 이론의) 증거가 좀 애매하다”고 답했다.

장하준 교수는 이날 “1960년대 초 한국이 ‘휴대전화’ 주요 수출국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으면 다 웃었을 것”이라면서 “복지를 논할 때도 긴 시각과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공공지출 비중이 꼴찌 수준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장 교수는 특히 “ ‘경제가 어려운데 복지 안 해야 되는 것 아니냐’ 얘기하시는 분들은 복지하고 성장이 배치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 1960~1970년대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해고되면 2~3주 재교육받아서 신발공장에 취직해서 일해도 되지만, 향후 사양산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조선산업이나 철강산업에서 일하던 분들이 신산업이라고 하는 생명공학, 컴퓨터 이런 쪽으로 옮겨가려면 2~3주 갖고 안되고 몇 달, 몇 년이 필요하다”면서 “(한국에는) 그사이에 받쳐줄 복지제도가 없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그 이유 때문에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논리가 더 강한 미국에서, 사민주의를 한다는 핀란드와 스웨덴보다 구조조정하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스웨덴·핀란드에선 직장을 잃어도 정부가 최대 2년까지 봉급의 60~80% 정도를 지원하며 재교육·취업을 알선해주기 때문이다. “실업을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다른 살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한국의 많은 문제가 사실 복지제도 미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세 배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복지가 약함으로써 계층 간의 이동성까지 떨어지는”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세계 최저 출산율을 지적한 뒤 “앞으로 20~30년 후 진행되는 고령화에 대처하려면 이민을 받아도 보통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속도조절을 하려면 여성들이 애 낳으면서 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자꾸 개방이 진전되고 있는데 그만큼 외부충격 때문에 조정해야 할 필요가 계속 생길 것”이라면서 “그런 환경에선 복지국가 같은 사회안전망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약 50년 후 한국을 생각해보자”면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역사를 얘기했다. 스웨덴은 1880년대엔 “작은 정부의 모범”으로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이 프랑스 15%, 미국 10%일 때 6%에 불과한 나라였다.

또 1920년대엔 노사분규 일수가 당시 통계집계가 가능한 국가 중 최악이었다. “매우 보수적인 나라”였던 것이다. 그즈음의 스웨덴을 두고 “이 나라는 100년 후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었을 것”이라고 장 교수는 말했다.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의 식민지였다가 내전을 거쳤고, 독일 나치와 손잡았다가 20년간 배상의 짐까지 짊어졌다. 1960년대 공공지출이 OECD 평균 이하였던 이 나라는 50년 뒤인 2009년엔 최상위권이 됐다.

장 교수는 “이들 나라도 (복지국가가) 당연해서, 쉬워서 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선택해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어떤 틀을 짜느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우리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전날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대해서는 “더 걷어간 정부가 그만큼 좋은 서비스를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유리봉투 봉급생활자만 얻어맞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려면 고소득자들이 돈을 숨기는 등의 탈루를 막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물건만 좋으면 산다는 사실’ ”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더 좋은 (공공)서비스를 보여준다면 세금이 조금씩 올라가도 불평이 잦아들 것이고 그런 것이 별로 없다면 국민들의 반대가 클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 교수는 “제 13살짜리 아들이 50대 중반이 됐을 때 한국이 어떻게 됐으면 좋겠나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경제개발계획을 세워서 하듯이 (복지를)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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