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는 치즈? 그게 다 거짓말이야”

2008.03.04 12:28 입력

최근 값비싼 와인에 대한 이상 열풍과 지나치게 격식에 치우친 한국의 와인 문화에 대해 명사들이 일침을 가했다.

지난 2월 22일 경향닷컴 취재팀은 만화책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이자 최근 와인관련 책을 펴낸 이원복 교수와 한국와인협회 부회장 김준철 원장을 만났다.

이원복교수는 지난 11월 저서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펴낸 후 불과 2개월만에 5만권이 판매돼 명실공히 와인도서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김준철 원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와인을 배웠고. 한국와인협회 부회장인 동시에 한국와인아카데미의 원장으로 많은 와인 전문가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 와인 고수.

20배 비싼 와인이 20배 맛있나?

이 두사람을 함께 만난 곳은 서울 강남 잠실의 이원복 교수 집.

엄청난 재력가일줄만 알았던 이원복 교수는 의외로 허름한 '잠실 장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실내는 무척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고, 층도 14층이어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곳을 '장미살롱'이라고 부른단다.

두 사람의 대담은 와인전문가답게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내놓기부터 시작됐다.

이원복교수를 가장 존경해왔다던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침니락(Chimney Rock)'을 내놓았다. 이 와인은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소위 '유명와인'은 아니지만, 카버네쇼비뇽 품종의 묵직한 맛이 인상적인 미국 와인으로 가격이 13만원대다.

김준철원장이 미국 유학생활을 통해 와인에 관련한 지식을 얻었음을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원복교수는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될까 두렵다"면서도 이탈리아 와인 '루첸테(Lucente)'를 내놓으며 응수했다. 김준철 원장은 이 와인이 “미국 와인의 명가 '로버트몬다비'와 이태리 와인의 명가 '프레스코발디'의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유럽 생활을 오래한 이원복 교수와 미국 생활을 오래한 김준철 원장이 함께 하는 자리라는 점을 감안한 탁월한 와인 선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루첸테'는 뛰어난 과일향에도 불구, 가격은 6~7만원대로 역시 중가(中價) 와인에 속한다. 유명와인이라던 페투리스나 라뚜르 같은 값비싼 와인을 즐기는 경우는 없느냐는 질문에 딱 잘라 "그런건 현지 최고급 레스토랑 소믈리에도 못먹어보는것"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20배라고 맛이 20배 좋은건 아니다"라며 "약간의 차이 때문에 수십배 비싼 와인을 먹느니 차라리 좀 저렴한 와인을 여러 병 먹겠다"고 했다. 진정 애주가다.

김정일, 김대중에 '250만원짜리', 노무현에는 '4만원짜리'

김준철 원장은 "와인에 격식은 필요없지만, 지식을 갖춰두면 얘기꺼리가 많다"고 말하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 정상회담자리에서 북측이 250만원 상당의 샤또 라뚜르를 내놓은 에피소드를 설명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어렵게 준비한 와인일텐데, 김대중 대통령은 와인에 대해 일언반구 한 마디도 안했다는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와인에 대해 한마디라도 했으면 벌써 북한까지 철도가 왔다갔다 했을지도 몰라”라며 농담을 했다. 이어 “그렇게 무관심하니까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 방북때는 봐, 정상회담인데 4만원대 와인 내놓잖아”라고 말했다. 비즈니스를 위해선 아무래도 와인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와인에는 치즈? 그게 다 거짓말이야!

모두 술이 거나해지자 이날 자리는 와인에 관한 잘못된 상식들을 폭로하는 자리가 됐다.

그들이 잘못된 와인 문화라고 지적하는 대화의 요점을 들어보자.

이: "어떤 와인이 좋은겁니까?" 이건 우문인것 같애
"어떤 스타일의 여성이 좋습니까" 이거랑 똑같애.
아프리카 어떤 부족은 목이 길다란 여성이 인기고, 어떤 부족은 입술이 튀어나온 여성이 인기잖아.

김: (잔 다리부분을 잡으며) 깡드쉬하고 김대중전대통령 건배 사진을 보면 프랑스인 깡드쉬는 잔의 볼부분을 잡고 있는데, 김대중 전대통령은 잔 다리를 움켜쥐었다고. 이렇게 잡을 필요 없어, 그 사이에 온도변화가 얼마나 일어난다고...

이: 프랑스 사람은 절대 안해, 디캔팅. 그거 옛날에는 불순물 가라 앉히기 위해서 했던거야.

김: 와인샵에 흔한 촛불도 온도를 높이고 그런 용도가 아니야. 병목에 불순물이 넘어가는걸 볼 수 있도록 하는거야.
병목을 데워서 에어레이션을 한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해보면 그을음만 생겨.

이: 병 밑에 파인것이 웨이터가 이렇게 따르라고 하는거래, 웃기고 있네, 여기 다 찌꺼기 가라앉으라고 그런거야.

이: 비싼 와인이 더 맛있다는건 분명해요. 그러나 와인이 비싼만큼 값이 좋으냐 그런건 아니죠. 20배 비싸다고 20배 맛있는건 아니거든.

이: 음식에 맞는 와인이 있다는건 거짓말이야. 고기에는 레드와인이다 이게 순 거짓말이야.

이: 와인 선입견이 너무너무 많아. 치즈 왜 안내놓게.
치즈를 먹으면 와인 맛이 싹 사라져.
난 지금까지 와인하고 치즈를 같이 먹는 서양 사람은 본적이 없어.

김: 서양 사람은 음식이 한판 문화야. 그런데 우리나라는 음식이 한상 문화거든. 모든 음식하고 어울리는 와인은 없거든.

마지막으로 일반인이 와인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 묻자, 이원복 교수는 가볍게 응수했다.

"와인요? 그저 좋아하는 대로, 그리고 당신이 주인으로서 드시면 됩니다."

<경향닷컴 김한용기자 whynot@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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