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목욕탕

2010.02.11 18:10 입력 2010.02.11 23:06 수정

명절이면 콩나물 시루처럼 붐비는 ‘살가운 추억’

한번씩 뜰채가 등장했다. 목욕탕 주인장은 긴 장대에 그물망이 달린 뜰채를 들고와 몇 차례 물위를 가로질러 둥둥 떠있던 ‘그것들’을 건져내곤 했다. 잠시 탕 밖에 나가있던 사람들은 다시 탕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콩나물 시루처럼 비좁은 목욕탕은 사람들로 붐벼 엉덩이 붙일 데가 없었다. 특히 설날을 앞둔 목욕탕은 대한민국 사람들 누구나 꼭 한번은 가야 하는 곳이었다. 실상은 집에 온수가 나오지 않고 목욕탕이 없기 때문이었지만 깨끗한 몸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조상을 모시겠다는 순박한 마음들이 벌거벗고 장사진을 이뤘다. 목욕탕에서 씻어낸 것이 몸만은 아니었을 터.

196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울 북아현동 ‘능수목욕탕’ 입구. 김문석 기자

196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울 북아현동 ‘능수목욕탕’ 입구. 김문석 기자

요즘 아이들에게 구식 목욕탕은 체험학습 삼아 가볼 만한 곳일지도 모른다. 첨단 시설의 찜질방과 놀이기구가 가득한 워터파크, 쾌적한 수영장이 더 친근하다. 그러나 1970~80년대 대중목욕탕의 번성기를 지나온 아이들과 어른들은 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목욕탕의 살가운 추억을.

한겨울 단잠에서 깨어나 엄마의 무지막지한 손에 이끌려 목욕탕으로 향하곤 했다. 엄마는 가는 길 내내 연습시킨다. “목욕탕 주인이 물으면 몇 살이라고 했지?” “나 8살인데….” 그럴 때면 ‘꿀밤’이 날아왔다. “7살이라고 했지, 따라해봐 7살!” 드디어 매표소 앞.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7살이요”, 주인이 째려본다. “호호, 우리 애가 좀 커서….” 72년 입욕료는 7세까지 90원, 8세부터 130원이었다. 옷장 앞에 섰는데 이번엔 같은 반 남자애가 여탕에서 서성였다. 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60년대 시작된 주택 개량의 움직임은 목욕탕을 갖고 싶은 열망에서였다. 그러나 집안에 목욕탕을 두는 것은 큰 부자들이나 가능한 일이었고 대부분은 늦은 밤 부엌과 수돗가에서 몸을 씻거나 드문드문 생겨난 대중목욕탕을 찾았다. 그나마 시골에선 버스를 타고 몇 십리 떨어진 읍내 목욕탕에 가야 했다. 70~80년대 도시에는 대중목욕탕이 넘쳐났다. 특히 목욕탕은 명절이 대목이었다. 설날과 추석을 맞아 기습적으로 입욕료를 올리는 일이 잦았다. 성인 여자는 남자에 비해 입욕료가 20~30원 비쌌다. 목욕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두세 시간으로 남자들보다 길었다. 아줌마들은 몰래 빨랫감을 갖고와 말갛게 빨아갔다.

70년대 후반엔 ‘때밀이’로 불린 목욕관리사가 등장한다. 요즘 같아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라며 반겼을 테지만 그땐 시각이 달랐다. 80년 한 신문의 칼럼에서는 때밀이의 등장을 두고 요지경 세상을 개탄한다. ‘현대인들은 번연히 자신의 손이 있는데도 남의 손을 빌려 때를 미니….’

목욕탕 얘기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이태리 타월’의 출현이다. 지금도 애용되는 이태리 타월은 원조논쟁이 필요없는 그야말로 우리의 생활문화유산이다.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펴낸 ‘코리아 디자인 2008’에도 당당히 들어가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이태리 타월은 62년 부산에서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김필곤씨가 디자인했다. 새로운 타월 개발에 골머리를 앓던 그가 기분전환을 위해 목욕탕을 찾았고 마침 실패한 원단 조각으로 몸을 문지르다가 지금의 이태리 타월을 만들게 됐다. 묵은 때가 손쉽게 벗겨져 특허까지 냈다. 이름은 왜 ‘이태리 타월’일까. 개발 당시 원단이 이태리에서 수입한 비스코스 레이온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에게 목욕탕은 어떤 의미일까. 90년대부터 목욕탕은 휴식을 위한 공간쯤으로 바뀌었다. 또 소통의 상징적인 장소로 여겨져 대기업 간부회의나 정치인들의 회동이 이뤄지기도 했다. 개화사상이 밀려들어온 조선시대 말, 목욕탕은 시대의 반역자와도 같았다. 중인 계급들이 조상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을 철폐하고 목욕간으로 개축(‘서울 20세기 생활·문화 변천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목욕탕의 역사에는 죽은 조상보다 기성 도덕에 반기를 들고 생활의 편리를 선택한 이들의 흔적이 배어있다.

모레가 설이다. 늙은 부모의 마른 몸을 밀며 찡해하는 효자 효녀와 분홍빛 볼로 커피우유를 마시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흔하지는 않겠지만, 깨끗한 몸과 더불어 조금이라도 새 마음을 가지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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