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 준법투쟁에도 무차별 적용

2010.04.29 18:18 입력 2010.04.30 11:16 수정

89년 이후 급증… 쟁의행위 죄목 중 ‘최다’

업무방해죄는 그동안 적법한 절차를 거친 파업에 이르기까지 노동조합의 쟁위행위를 처벌하는 데 광범위하게 적용돼왔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업무방해죄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라고 비판해왔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말 철도공사 노조 파업이 있다. 철도노조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8일간 임금과 단체협약이 결렬돼 전면 파업을 벌였다. 출근 저지나 점거농성을 벌이는 대신 노무제공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법에 맞춰 파업을 했다. 하지만 검경은 파업 후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을 구속했다. 철도 운행 중단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인 구본홍 사장의 선임을 반대해 사장실 점거농성을 벌인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도 사측으로부터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됐다. 노 위원장은 항소심 공판에서 벌금 2000만원이 선고됐다. 2007년 비정규직법 통과로 대량해고 위기에 놓였던 이랜드 노조원들도 서울 상암동 홈에버에서 농성을 벌이다 업무방해죄로 기소돼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쌍용차나 금속노조 등 일부 과격한 쟁의행위를 벌인 단체에 대해서는 더 강한 처벌이 이뤄졌다. 쌍용차 노조는 77일간 평택공장을 점거했다가 공장 시설관리 및 협력업체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적용됐다. 법원은 한상균 노조지부장 등 간부 8명에게 징역 3~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저지하기 위해 5일 동안 단체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간부들에게는 징역형이 내려졌다.

노조의 쟁의행위를 처벌하는 데 있어 업무방해죄가 이처럼 폭넓게 적용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준법 파업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정당방위로 간주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원칙이 무시돼왔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의 경우 쟁의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하지는 않는다. 다만 쟁의 과정에서 폭력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선별적으로 처벌한다. 파업을 합법으로 이해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쟁의행위를 형법상 범죄 구성요건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도 1970~80년대만 해도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업무방해죄가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다 89년부터 일선 검찰청에서 노조의 쟁의행위를 업무방해죄로 기소하기 시작했다. 88년에는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례가 17건에 불과했지만 89년 248건, 90년에는 308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2~2006년 노동과 관련된 형사사건 1심 공판에서 쟁의행위의 형사처벌에 적용된 죄명 중 업무방해죄의 비율은 30.2%에 달했다. 또 형사사건 가운데 평화적인 파업·태업·준법 투쟁이 57.9%를 차지했지만, 이런 쟁의행위에 적용된 업무방해 사건에서 1.1%만 무죄가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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