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2시35분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맞은편에 있는 시민열린광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의 단식농성 담화문 낭독이 끝나자 광장에 경고방송이 울려퍼졌다.
“이곳은 다른 단체가 이미 집회신고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으므로 불법옥외집회에 해당합니다. 자진해산하십시오.” 김 위원장의 회견장 옆에는 한 보수단체가 세워놓은 ‘6·25기념 사진전’의 흑백사진 몇 점이 있었다. 경찰이 말한 ‘타단체 집회’는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종로서 경비과장의 경고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경찰 200여명이 민주노총의 천막을 강제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조합원의 얼굴을 채증하기 위한 경찰 카메라가 쉴새없이 돌아갔다. 곳곳에서 “이거 놔! 아악!”하는 노조원들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평화로웠던 광장은 불과 몇 분 사이 텐트를 지키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경찰의 몸싸움장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민주노총 관계자가 경비과장에게 집회신고증을 보여줬지만 경비과장은 서류확인을 거부했다. 자신은 집회신고가 됐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고, 민주노총의 기자회견과 천막 설치는 엄연히 불법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차라리 나를 죽여라. 집회신고서가 이렇게 있는데 왜 신고가 안돼 있다는 거냐. 신고를 해도 불법집회냐!”고 소리를 높였다. 경찰들은 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경찰과 조합원의 대치는 1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경찰 측에서 집회신고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탓이었다. 민주노총이 경찰에서 받은 집회신고서를 보여줄 때 눈과 귀를 닫았던 경비과장은 이내 경찰의 철수를 지시했다. 경찰의 실수와 잘못된 공권력 집행으로 타임오프 파행 문제를 항의하며 단식에 들어가는 김 위원장의 회견장은 이미 엉망이 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