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과 노동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늘었다.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여서 청소년 노동인권을 주제로 다루는 단체들도 여럿 생겼다. 학생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데에만 급급한 보수적 교육관의 교사들도 대입 논술에 매년 노동문제가 출제된다는 이유로 강연을 부탁해오기도 한다. 노동인권에 대한 이해가 취약하다 못해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본주의 사회 대한민국에서 비정규 노동자, 이주 노동자, 청년 실업 문제 등이 논술 주제로 출제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보수 언론의 사설들만 밑줄 그어가며 읽은 학생들은 그러한 논술 과제에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한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하는 중학생들이 “철수네 아버지는 똥 퍼요”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부탁했다. 어떻게 그런 제목을 붙이게 됐느냐고 물으니 친구 아버지 중에 정말로 그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지게를 지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을 뿐, 누군가는 정화조 청소 일을 계속해야만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지켜진다. 청소년들이 그러한 ‘노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궁금해 토론 끝에 그런 제목을 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법 없어
노동조합이란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고, 노동운동이 사회에 일시적으로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으나 그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유익을 위해 마땅히 감수해야 할 몫이라는 내용을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고 난 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여고생이 물었다. “왜 정부에서는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들을 모두 조사해서 처벌한다든가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인가요?” 아,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발상의 전환’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이명박 정부가 조치를 취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조치는 학생이 생각한 것과 정반대의 방향이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타임 오프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노조 전임자 수를 몇 분의 일로 줄여 조직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드는 타임 오프 제도를 밀어붙이는 데에는 ‘노조의 힘이 너무 강력해 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오해가 그 바탕에 깔려있다. 말도 안되는 오해에 일말의 타당성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왜 정부에서는 노동조합 전임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노동조합을 모두 조사해 최소한의 전임자를 둘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가? 그것은 노사 자율에 맡길 문제라고? 에끼, 이 사람들아, 노조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는 합의야말로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할 일이다.
노동조합 일만 하는 전임자가 왜 회사에서 임금을 받느냐는 문제 제기는 얼핏 타당한 것처럼 들리지만 그것은 마치 대학교수에게 왜 방학 기간에도 임금을 지급하느냐, 또는 공장에서 직접 땀 흘리며 노동하지 않는 관리자들에게 왜 임금을 지급하느냐고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다른 나라 시행” 태연히 거짓말
200년 넘는 세월 동안 산별노조 또는 지역노조였던 다른 나라들과 달리 기업별 체제라는 이상한 형태의 우리나라 노조가 수십년 동안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기반이 노조 전임자 제도다. 노조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노사관계는 자율에 맡기고 균형을 이루는 노사관계는 법률을 빙자해 약화시키겠다는 것이 어떻게 타당한가? 국내외의 수많은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한국 외에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법을 가진 나라가 없고 한국의 타임 오프 제도와 같은 개념이 다른 나라에는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도 “다른 나라에서는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지식인 전문가들은 도대체 지구 어느 구석에 있는 후진국의 노사관계를 모범으로 삼았는지 궁금하다. 노예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가지 학설로 증명하며 귀족들로부터 부귀영화를 약속 받았던 고대의 철학자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