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관용의 힘은 연대와 평등

2011.07.28 21:58 입력 2011.07.28 23:43 수정

나눔·절제의 문화 정착… “더 많은 민주주의와 개방”

노르웨이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극우성향 테러 용의자가 76명을 살해한 참사 이후, 시민들은 ‘사랑’을 외치며 장미꽃을 들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59)는 27일 “폭력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민주주의와 개방성, 정치참여를 더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성숙한 모습”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이 같은 민주주의와 관용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노르웨이는 남한의 3배가 넘는 면적에 490만 인구가 사는 세계 7위의 원유수출국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만4000달러로 세계2위, 삶의 질과 복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곳의 대표작가 요 네스뵈는 27일 뉴욕타임스에 실은 글에서 노르웨이는 평화로운 나라였다고 적었다. “석 달 동안 두 건의 쿠데타, 대재앙급의 기아, 학교 총기난사, 두 건의 암살과 쓰나미를 외국여행에서 겪고 돌아와보면 달라진 것이라곤 신문의 낱말퍼즐뿐이었다”는 것이다.


<b>미국서 울리는 ‘희망의 종’</b> 아슬록 니가르드 미국 뉴욕 주재 노르웨이 영사가 27일 맨해튼의 세인트폴 예배당에서 노르웨이 연쇄테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희망의 종’을 울리고 있다. 희망의 종은 9·11 테러 이후 영국이 예배당에 기증한 것으로 런던과 마드리드, 뭄바이, 모스크바 테러 이후에도 타종된 바 있다.  뉴욕 | AP연합뉴스

미국서 울리는 ‘희망의 종’ 아슬록 니가르드 미국 뉴욕 주재 노르웨이 영사가 27일 맨해튼의 세인트폴 예배당에서 노르웨이 연쇄테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희망의 종’을 울리고 있다. 희망의 종은 9·11 테러 이후 영국이 예배당에 기증한 것으로 런던과 마드리드, 뭄바이, 모스크바 테러 이후에도 타종된 바 있다. 뉴욕 | AP연합뉴스

진보와 보수는 만인이 합의한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지를 놓고 토론하고, 이념 논쟁은 1970년대 이후 이민자 수용과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에나 벌어지는 수준이었다고 그는 전한다. 구성원 간 평등의식은 강하다. 길을 가다 총리를 만난 시민이 “옌스!”라고 존칭 없이 이름만 불러 인사할 정도다.

이 같은 민주주의 전통은 181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령이던 노르웨이는 당시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며 귀족제를 금지하는 진보적 헌법을 제정했다. 이후 스웨덴의 지배를 거쳐 1905년 독립할 때도 헌법은 유지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에서 치욕적인 5년을 겪은 뒤 헌법의 평등정신은 더욱 강화됐다.

스타인 링겐 옥스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구조도 노르웨이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줬다고 지적한다. 토양이 비옥한 서유럽은 봉건제가 발달해 지배-피지배 계급이 분화한 반면, 노르웨이는 토양이 척박한 나머지 누구도 큰 부를 축적하지 못했다. 대신 소규모 자립 영농들이 발달했다. 여기다 산업화가 더뎠던 탓에 20세기 들어서까지 부르주아 계급은 크게 발달하지 않았다. 즉 동질성이 강한 사회였다.

19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노르웨이에서는 나누고 협동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이는 사회적 연대와 나눔을 강조하는 복지제도 발달로 계승됐다. 링겐 교수는 “노르웨이의 역사적인 정치유산은 복지제도를 통해 유지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북유럽 사회의 공동체주의와 평등주의, 즉 ‘얀트의 법칙’은 연쇄테러 용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에 대한 노르웨이 시민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브레이비크를 ‘그 남자’ ‘배신자’라고만 칭할 뿐 이름을 언급하기를 꺼린다. 정치 칼럼니스트 미칼 헴은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이들이 브레이비크가 관심받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문화도 이번 사건에 대해 시민들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던 이유다. 네스뵈는 “전 국민의 미덕으로 ‘절제’가 꼽히는 노르웨이에는 ‘머리를 차게 하다’는 단어는 있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하다’라는 표현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토양에서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사회적 가치가 됐다. 노르웨이의 정치학자 파르 셀라와 더그 울리벡은 “노동당이 2차 대전 이후 집권하기에 훨씬 앞서 정치에 참여하는 문화가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노르웨이의 평균 투표율은 70%에 이른다. 국민들은 사회적 이슈를 놓고 일상적으로 토론한다.

그럼에도 노르웨이 정부는 현재의 민주주의에 문제가 많다는 ‘자아비판’을 2004년 내놨다. 무려 5년에 걸쳐 작성한 50권짜리 보고서에서 노르웨이 정부는 “민주주의의 인프라를 긴급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권자-지방정부-중앙정부’를 연결하는 고리가 부식됐다는 것이다. 또 나라가 중앙공무원, 은행가, 법률가와 언론의 족벌체제에 의해 지배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원유 소득으로 나라가 부유해지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정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내놨다. 실제 1990년대 말부터 노르웨이 젊은이들의 정치참여는 소폭 줄었다. 기존의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 성향이 강해진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스톨텐베르그 총리가 27일 기자회견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와 개방”을 요구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정치적 목적의 테러행위에 대해 과민반응을 할 경우 시민사회와 정치체제가 더욱 멀어질 수 있고, 되레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늘려야 이번 사건과 같은 극단주의 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언론인 사이먼 젠킨스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노르웨이는 이번 사건을 토론으로 풀어낼 수 있다. 위협에 대해 일일이 편협한 대책으로 맞서는 자칭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노르웨이를 가르치려 들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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