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노래가 없다

2011.08.12 20:57
임진모|대중문화평론가

폭행혐의, 마약복용, 전 남편과의 법정투쟁, 자기 파괴행위 등 어지러운 사생활로 머지않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영국 여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결국에는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60년대를 연상시키는 복고적 사운드로 선풍을 일으키면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근래 가장 인상적인 음악을 했다는 찬사를 받아온 인물이다. 음악도 빼어났지만 망자에게 듬뿍 영예를 안겨주는 서구 음악계의 미덕에 힘입어 사망과 동시에 전설로 치솟았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월드 스타로 비상시켜준 노래는 2007년 ‘리햅’이란 제목의 곡이다. 리햅은 알코올중독 치료소를 가리킨다. 노래 내용이 충격적이다. ‘그자들이 날 알코올중독 치료소로 보내려고 했지만 나는 절대 안 갈 거야, 안 갈 거야!’ 실제로 그는 자신을 알코올중독자로 몰며 치료소에 집어넣으려고 한 매니지먼트사와 결별한 경험이 있다. 이 사건을 그대로 노래로 옮긴 것이다.

[임진모칼럼]자기 노래가 없다

가사에 술만 나와도 ‘미성년자 청취불가’ 판정 심의를 받는 요즘 우리 음악계에서는 살아남기 곤란한 가사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리햅’이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직접 겪은 경험을 솔직히 토해낸 ‘자기 노래’라는 점이다. 놀랍기는 해도 남이 아닌 자기의 얘기를 전하기에 실감의 극치를 제공한다. 팬들은 이런 노래를 들으면서 가수의 진한 삶과 감정에 몰입하고 또 교감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곡에 19금(禁) 딱지를 붙였겠지만 미국은 그래미상 주요 5개 부문상을 몰아주는 영광을 하사했다.음악은 어떤 면에서 만든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 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만든 사람의 실제 삶과 사고가 노래에 담겨야 리스너(경청자)의 공감을 부르게 되고, 또 그런 곡이 오랜 생명력을 얻는다. 우리의 대중음악, K팝은 근래 프랑스 공항에서의 소동과 뜨거운 공연열기가 말해주듯 해외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리듬과 가사 반복에 따른 중독성을 인정받으면서도 한편으로 가수와 노랫말이 전혀 상관관계를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노랫말이 명랑하고 유쾌한 만큼 가수의 생활도 진짜 즐겁냐는 것이다.

가수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시장의 동향과 소비자 감각만을 반영한 막연한 상상의 가사를 읊어대는 것 아닌가. 개성과 자기표현이 강조돼야 할 인디 음악마저도 ‘저게 정말 자기 얘기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노래들이 있다. 어느샌가 우리 대중음악은 주류든 비주류든 자기 노래 부재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설령 남이 써준 노래라도 가수의 실질적인 삶 아니면 최소한 이미지와 부합해야 감동이 생겨나는 법인데, 상당수의 요즘 우리 노래는 공허한 대사와 순간의 아이디어만이 가득하다.

다운로딩 차트를 보면 1위를 차지한 곡이 2주 이상 그 자리를 지킨 사례가 거의 없다. 유통기한이 짧아도 이렇게 짧을 수가 없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조명받은 노래들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인기가요가 수시로 바뀐다는 것은 노래가 저장되지 못하고 소비로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 대중음악에 가수의 삶을 드러내 듣는 사람과 대화하려는 자기 노래가 태부족이라는 점에서도 비롯한다. 가슴에 남는 노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예술과 산업이 동행하는 시대라지만, 그래서 시장에서의 성과와 그것을 가져올 수법이 중요해진 때라지만 음악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먼저 음악가의 자기표현이다. 가수의 현실과 노랫말이 연결고리를 빚어내야 팬들이 오래도록 기억하고 담아둔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리햅’과 같은 노래가 우리 음악에 많아져야 한다. 일주일 듣자고, 짧은 기간 팔자고 음악을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많이 본 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