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중가요를 듣는가

2011.09.09 17:10
임진모 | 대중음악평론가

2006년에 인기를 누렸던 가요 가운데 ‘술이야’라는 곡이 있다. ‘슬픔이 차올라서 한 잔을 채우다가/ 떠난 그대가 미워서 나 한참을 흉보다가/ 나 어느새 그대 말투 내가 하죠/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널 잃고 이렇게 내가 힘들 줄이야…’ 남성 듀오 ‘바이브’가 부른 이 곡은 발표 당시 방송 차트 정상에 올랐고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폭발적으로 애청되었다. 대중이 열심히 듣고 충분히 소비한 곡인 셈이다.

하지만 올해 ‘나는 가수다’에서 장혜진이 ‘술이야’를 다시 불렀을 때는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음반심의위원회에 의해 청소년 유해물, 즉 ‘19금(禁)’ 판정이 내려졌다. 한 곡을 가지고도 시대가 달라진 탓인지, 요즘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인지 전혀 다른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바이브의 것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구성된 2006년 11월 이전에 나왔기 때문에 대상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임진모칼럼]왜 대중가요를 듣는가

다음 가사는 어떤가. ‘그대 바램에 차지 못했던 내 모습을 이제서야 깨달았어요/ 그대여 행복해 줘요 부디 웃음 가득할 날 영원하기를/ 추억은 가슴에 묻고서 가끔 술 한 잔에 그대 모습 비춰 볼게요.’ ‘낭만밴드 여우비’라는 인디밴드의 곡 ‘여자와 남자가 이별한 뒤에’의 노랫말이다.

이별 후의 기분과 다짐을 표현한, 조금은 평범한 가사임에도 이 곡도 여지없이 ‘19금’으로 지정되었다. 이유는 딱 하나, 마지막 부분의 가사 ‘술 한 잔’ 때문이다. 아무리 청소년 보호 차원이라지만 작곡가가 결과에 깜짝 놀랐을 정도로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이러니 거의 알레르기 반응 수준의 심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대중가요를 왜 듣는가’라는 해묵은 질문을 던져본다. 대중가요는 바른 생활을 위한 장(場)이라고 할 수 없다. 직장 근무와 학업 등 규율과 규칙으로 짜인 생활에서 벗어나 쉼과 여유 그리고 상상을 재충전하는 것이 대중예술이요, 대중음악이다. 이 때문에 가요의 상당수가 일탈과 파격을 드러내거나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다.

청취자들도 실제 생활과 다른 노래 속에서 비정상과 무질서의 쾌감을 맛보고 위안을 얻는다. 일상의 현실과 분리선을 치고 있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대중음악에 빠져들고 리얼한 감동을 바라는 것이다.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교과서와 같다면 무엇하러 노래를 찾겠는가. 노래방이 사무실이나 교실의 분위기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대중가요에 표현된 술과 담배도 음주와 흡연 조장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중가요의 주요 표현정서라고 할 외로움이나 그리움, 때로는 비참한 기분을 상징하는 장치일 뿐이다. 바이브의 ‘술이야’는 비가(悲歌)이지 권주가가 아니며, 역시 ‘19금’인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은 술을 퍼마시자는 폭음의 찬양이 아니라 실연의 좌절이다.

술과 같은 언어들이 없으면 대중가요는 맛, 들을 맛을 상실한다. 청소년보호위원회의 판정에 따른다면 청소년은 술이나 담배라는 말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건전가요만을 접해야 한다. 청소년보호위원회와 실제 심의 주최인 음반심의위원회에 대한 음악계의 불신이 고조되는 이유는 ‘대중가요적 심의’가 아닌 ‘교과서적 심의’를 하고 있다는 인상 때문이다. 음악을 놓고 예술 심의를 해야지, 왜 도덕과 청렴성 심의를 하느냐는 것이다.

청소년이 해악에 물드는 것을 바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최근 음반 심의에서는 청소년을 나쁜 것으로부터 반드시 격리해야 한다는 일종의 도덕적 강박이 읽힌다. 여기서 과잉 심의라는 혐의가 나오는 것이다. 또 심의기준이 애매해 대중음악의 심의마저 사회정치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의심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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