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문제는 가창력

2011.11.04 21:25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

‘돌아온 세시봉’과 ‘나는 가수다’ 열풍이 있기는 하지만 2011년 대중음악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아이돌 음악의 구미시장 진출이다.

케이팝(K-Pop)이란 신조어마저 단숨에 보통명사로 만들어버린 이 가공할 흐름은 아이돌 음악에 대한 호불호를 잠재우고 긍지와 황금빛 미래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각별하다. 기획사, 가수, 제작자, 미디어 종사자 등 음악 관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 국민이 케이팝 홍보대사가 된 느낌이다.

[임진모칼럼]케이팝, 문제는 가창력

늘 우리가 해외 팝가수에게 열광하는 장면만 봐오다가 한국가수들한테 외국인들이 환호하는 천지개벽의 상황은 놀랍고도 짜릿하다. 물론 자부심 이전에 케이팝의 글로벌 대공세에 대해 아직도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기성세대가 특히 그렇다. “저거 사실 맞아요?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갑자기 케이팝이 주목을 받는 건가요?”

어른들이 갖는 의구심과 의문의 바탕에는 케이팝 가수들에 대한 약간의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케이팝의 급부상에는 입이 벌어질 정도의 화려한 군무와 아이돌의 빼어난 비주얼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쯤은 그들도 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우리 가수들이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연예 퍼포먼스의 세 조건 가운데 댄스와 비주얼은 인정하지만 가창력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의 시선은 정당하다. 우리 아이돌 가수들이 노래를 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춤과 외모가 강조되다 보니 가창력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가창력은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고 각각의 시대에 통하는 노래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어떤 시대든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은 있다. 음정, 발성, 발음, 개성적인 보이스(음색) 등등. 이런 기준에서 봤을 때 노래가 여물지 않아 앵앵거리는 듯 들리는 케이팝의 인기곡이 부지기수다. 발음이 부정확해 가사가 뭐가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라이브에서는 음정의 문제가 심각하며 음색에서도 뚜렷한 개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일례로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노래는 격렬한 댄스 속에서도 힘이 느껴지지만 우리 아이돌의 노래에는 촉과 날이 없다. 아무리 저명한 해외 프로듀서가 쓰고 만들었어도 노래실력은 못 속인다.

케이팝의 생명력이 오래가기 위해선 홍보와 마케팅, 해외활동 가속화, 현지화 노력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가수의 가창력 연마에 피와 땀을 흘려야 한다.

당장은 댄스와 비주얼로 해외 음악팬들의 눈을 홀렸다면 앞으로는 귀를 장악해야 한다. 가창력이 가수에 대한 팬들의 지지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오랜 지지 여부’를 쥐고 있다는 점은 음악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곡 쓰기도 어느 정도는 가창력을 부각하는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의 아이돌 후크송은 너무 틀에 박혀 있고 자극적이다. 마음으로 곡을 쓴 게 아니라 무슨 수법으로 조립한 것 같은 느낌이다. ‘요즘 대중가요는 다 그게 그거 같다!’는 말을 심하다고 할 사람은 없다. 작곡가들은 이제 감각이 아닌 감동의 곡 만들기에 역점을 둬야 한다.

이게 되지 않으면 케이팝 열풍은 단기상품, 단명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근래 음악에 섹시 비주얼과 댄스의 요소가 상대적으로 강해졌다고 하지만 어느 시대든 근본이자 1순위는 가수의 가창력이다. 시청자들이 ‘나는 가수다’에 열광하는 것도 아이돌 가수로부터 얻지 못했던 가창력과 감동적인 곡 때문 아닌가.

우리가 그렇다면 외국의 음악팬들도 얼마 후에는 당연히 그렇게 된다. 비주얼과 감각은 경기로 쳤을 때 오픈 게임이지 ‘메인이벤트’가 아니다. 가창력은 메인이벤트에서 빛난다. 오픈 게임에서 승리했다고 본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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