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세 여성노동자 롬 파비
캄보디아 북서부 콤퐁톰에서 태어난 롬 파비(31·사진)는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만 마치고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시작했다. 나이를 좀 먹은 후엔 어머니와 함께 거리에서 빵을 팔았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은 하나둘 도시로 떠났다. 명절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친구는 파비에게 “20달러만 주면 프놈펜의 봉제공장에 취직할 수 있도록 말을 잘해주겠다”고 했다. 파비는 돈을 꿔 20달러를 마련해 친구에게 건넸다. 봉제공장은 주로 인맥을 통해 사람을 뽑기 때문에 뒷돈이 오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믿었던 친구는 돈만 챙겼고 공장 관리자는 “키가 너무 작다”며 파비를 채용하지 않았다. 3개월 동안 프놈펜을 떠돌다가 겨우 한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아주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면 집에 돈을 부쳐주고도 나를 위해 쓸 돈을 조금이라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16일 말했다.
프놈펜의 봉제공장이 파비 같은 소녀들에게는 ‘꿈의 직장’이었다. 배움이 적은 시골 소녀들에게, 그나마 번듯한 일자리는 봉제공장이 유일했다.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달랐다. 공장에서 일한 지 10년이 되어 가지만 잔업을 하고 각종 수당을 모두 합쳐도 한 달에 받는 돈은 110달러에 불과하다. 건설노동자인 남편과 둘이 시내에서 사는 데 드는 한 달 생활비는 최소 150달러. 하루 7.5달러를 받는 남편은 한 달 중 절반은 일거리가 없어 집에 있다. 아이를 키울 여력조차 없어 두 아이는 시골 어머니 집에 보냈다. 양육비로 30~35달러를 매달 고향에 부쳐줘야 한다. 결국 그에겐 200달러의 빚만 남았다. 파비는 이달 초 카나디아 공단 파업과 시위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했다. 위험하다며 말리던 남편도 “봉제공장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건설노동자 임금도 오르게 될 것”이라며 응원해주기 시작했다.
파비의 꿈은 언젠가 고향에 다시 내려가 직접 키운 채소를 내다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땅부터 사야 한다. 평생 적자인생을 살아온 파비는 “나는 태어나 단 한번도 저축이란 것을 해볼 수가 없었다”면서 “최저임금이 160달러로 인상되면 열심히 모아 땅을 살 돈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