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팬들, 엿 사탕 던지고 플래카드로 불만 표출해
선수단 귀국행사 중단… 구자철 “4년 뒤에 보여줄 것”
브라질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이 귀국한 30일 인천공항에서 감색 단복을 차려입은 선수들이 고개를 숙인 채 걸어나오자 한 줌의 호박엿 사탕이 날아들었다. 그 뒤에선 “엿 먹어라”는 외침과 함께 거친 비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손흥민(22·레버쿠젠)은 “이 엿을 먹어야 되나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껏 한국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한국은 이후 월드컵 때 공항 귀국 행사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치렀다. 그러나 브라질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환영과 위로는 언감생심이고, 안티 팬의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최악의 성적을 낸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도 겪지 못한 사건이다.
안티 팬들의 불만은 거셌다. 성적은 둘째치고 경기 내용부터 지적했다. 조별리그 내내 바뀌지 않는 전술과 선수 기용에 실망감을 표했다. 다음 카페 ‘너땜에졌어’ 회원 조모씨(41)는 ‘한국 축구는 죽었다’는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동료와 함께 들고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인맥으로 선수를 기용해 망했다”면서 “축구가 국민에게 엿을 먹였으니 국민이 다시 엿을 돌려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안티 팬들의 목소리는 현장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브라질에서 돌아온 선수들을 위로하는 축사를 전하다 중단했다. 끝없이 엿이 쏟아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홍명보 감독(45)이 기자회견에 나서 브라질월드컵 소감을 밝히는 도중에도 “이게 국민의 마음”이라며 엿 세례가 이어졌다. 쓴웃음을 지은 홍 감독은 “국민들께서 성원을 보내주셨는데 거기에 보답을 못해서 죄송스러울 뿐”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안티 팬이 등장한 와중에 월드컵 개막 전부터 약속됐던 포상금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한국은 브라질월드컵 출전만으로 확보한 950만달러(약 98억원)의 상금 일부를 선수들에게 나눠줄 예정이었다. 그러나 안티 팬들이 불만이 제기된 상황에서 포상금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만 지금 논의하기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 안티 팬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이번 대회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엿이 선수단을 향해 날아갈 때 “괜찮아요”, “기죽지 마”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칭찬과 성원에만 익숙했던 선수들은 큰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대표팀 주장 구자철(마인츠)은 “최선을 다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라며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4년 뒤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공항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