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보자’ 실제 주인공 류영준 교수 “실제로 내가 PD에게 물었다,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

2014.10.22 22:45 입력 2014.10.23 05:54 수정
목정민 기자

황우석 논문 조작 제보자

논문조작 밝힌 주역들보다 언론인에 초점 맞춰 아쉬워

황 전 교수, 99년부터 조작… 실제 복제 소 개발은 4년 후

“논문조작 사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아 미안했습니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41)는 줄기세포 조작을 다룬 영화 <제보자>의 감상평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영화를 제작한 측에 감사하다”면서도 “이번 영화는 언론인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진짜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영화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2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 들른 류 교수는 영화를 본 심경을 이같이 털어놓았다. 류 교수는 2002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팀에 합류했다. 팀장으로서 줄기세포 연구를 하다 2004년 말 황 전 교수의 여러 비리를 견디다 못해 연구실을 나왔다. 이후 그가 MBC 시사 프로그램 에 난자의 비윤리적 제공 문제와 논문조작 문제를 제보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홍역’을 앓았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인 류영준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인 류영준 강원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 “윤민철 PD와 이장환 박사 첫 대면이 백미”

류 교수는 <제보자> 명장면으로 생물학에 문외한이던 윤민철 PD(박해일)가 논문조작에 대해 황 전 교수의 극중 인물인 이장환 박사(이경영)의 해명을 듣기 위해 서울대 연구실을 찾아 수십명의 연구진과 마주하며 인터뷰하는 장면을 뽑았다. 류 교수는 “실제 당당하던 황 전 교수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한 형(의 한학수 PD) 한 번만 봐줘요. 내가 앞으로 잘할게’라고 논문조작을 처음 인정했다”며 “영화에 당시 긴장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보자가 윤민철 PD와 처음 만나는 장면도 실제와 흡사하다고 한다. 제보자인 류 교수는 한 PD에게 “진실이 먼저냐, 국익이 먼저냐”고 물었다. 그는 “한 PD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진실이 곧 국익’이라고 답했다”며 “만약 잠시라도 주저했다면 나는 제보를 안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했었다”고 했다. 인생을 통째로 바꿀지도 모르는 폭로를 앞두고 망설이던 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와 다른 부분도 있다. 복제 강아지 ‘몰리’가 암에 걸리고 이장환 박사가 몰리를 쓰다듬는 장면이나, 영화 속 제보자 딸이 아픈 것은 허구다.

■ 익명의 과학자들이 밝혀낸 논문조작

2005년 겨울 황 전 교수 논문조작 논쟁이 가열됐을 때 제보자가 류 교수라는 점이 알려졌다. 일하던 원자력병원에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집에도 취재진이 진을 쳤다. 사표를 냈다. 도피생활이 시작됐다. 8개월 된 딸과 부인을 데리고 찜질방, 모텔, 지인 집을 전전했다.

다수 언론이 그의 편이 아니었다. 류 교수는 “2005년 12월4일 한 방송사에서 황 전 교수를 인터뷰하는 기사를 내보내 여론이 안 좋아졌다”며 “그날 밤 (생명과학자들의 익명 커뮤니티) ‘브릭’에 어나니머스라는 대화명을 쓰는 사람이 ‘더 쇼 머스트 고 온(쇼는 반드시 계속돼야 한다)’이란 제목의 글을 올린 것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고 말했다. 어나니머스는 논문조작 증거를 찾아내면 감자 한 박스 보내겠다는 발칙한 단서를 달았다. 다음날 대화명 ‘아릉’이 브릭에 논문 사진 조작 증거를 올렸다. 류 교수는 “정말 극적이었다”며 “이때부터 언론에 과학자들의 객관적인 검증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논문조작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브릭의 주요 멤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류 교수에게 전달했다. 2006년 12월 서울 신촌 한 식당에 모인 이들 앞에서 류 교수는 참 많이 울었다. 당시를 회고하던 류 교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류 교수는 “황 전 교수의 조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진단했다. 황 박사는 언론에 복제동물을 개발했다고 하면서도 논문은 ‘바쁘다’는 이유로 출간하지 않았다. 류 교수는 “실험실에서 복제 젖소가 실제 개발된 건 2003년”이라며 “당시 외부에 알리지 않고 연구실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자축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구자들끼리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제야 나왔구나’라고 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류 교수는 황 전 교수의 논문조작 이유를 어디서 찾을까.

“국가적 유명세와 권력에 대한 유혹 때문에 끊임없이 논문조작을 감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황우석 사건 후 줄기세포 연구
성인세포로 복제 단계까지… 일,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노벨상’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이 드러난 이후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 연구는 어떻게 됐을까. 이는 인위적으로 핵을 제거한 난자에 복제하려는 사람의 체세포 핵을 이식한 뒤 실험실에서 배양해 줄기세포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황 전 교수가 2005년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가 조작으로 결론 난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는 8년이 지난 뒤 미국 연구진이 만들어냈다. 미국 오리건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팀은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해 지난해 5월 과학잡지 ‘셀(Cell)’에 게재했다. 연구진은 핵을 제거한 난자에 태아에서 얻은 피부세포를 넣어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지난 4월18일 국내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이동률 교수팀과 미국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정영기 교수팀이 성인 체세포를 이용해 줄기세포주를 확립하는 데 성공해 국제 저널 ‘셀 스템셀’에 게재했다. 이들은 성인세포를 이용해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난치병 환자의 피부세포를 이용해 직접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는 난자를 사용해야 해 윤리적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에 최근 인간 체세포에 바이러스를 넣는 등의 방법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연구가 활발하다. 세계 최초로 iPS를 만드는 데 성공한 일본 교토대 야마가타 신야 교수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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