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뉴라이트 운동을!

2016.05.20 10:51 입력 2016.05.23 13:59 수정
이대근 논설위원

[이대근의 단언컨대] 뉴 뉴라이트 운동을!

지난달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정당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이후 총선 패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친박과 비박간의 갈등이 다시 분출되면서 당장 ‘내일’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연 한국의 보수는 여전히 하나로 결속된 주류 및 기득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사진)은 20일 공개한 팟캐스트 「이대근의 단언컨대」 113회 ‘뉴 뉴라이트 운동을!’에서 한국의 보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한국의 보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국의 보수, 특히 보수정당은 권력과 이권, 그리고 그걸 정당화하는 약간의 명분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존립하는 집단이다. 바로 이 세 가지에 기반한 결속력으로 뭉쳐서 이 사회의 주류로 군림하고 있는 존재이다. 한국의 보수가 자기 고유의 이념, 가치, 비전이 없는데도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한국 보수가 하나로 결속된 주류 및 기득권으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 째 조건은 분배해 줄 만한 권력과 이권이 충분한가이다. 둘째 조건은 그걸 질서 있게 분배해줄 권위 있는 세력, 즉 힘의 중심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셋째 조건은 권력과 이권을 독차지해도 묵과해줄 수 있는 정당화 명분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첫째, 분배 가능한 권력이 남아있는지를 보자. 사실 20대 총선 패배 이후 배분할 권력과 이권이 별로 남은 게 없다. 앞을 내다봐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예 국물도 없을지 모른다. 위기감이 팽배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이런 때는 누군가가 계속 권력과 이권을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신뢰 있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패배 이후 전혀 그런 신호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점차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는 권력의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더 이상 박대통령을 내세워서 권력이든 이권을 챙길 수 없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박 대통령이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다른 인물이나 세력이 대신하면 될 텐데, 그 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셋째, 그동안 기득권 정당화의 명분과 이데올로기는 세 가지였다. 하나는 70년 성공신화이다. 한국을 이만큼 먹고 살 수 있게 만든 것은 보수세력 덕분이라는 인식이다. 둘은 보수도 이제는 군사정권의 후예가 아니라, 광주민주화 운동, 1987년 민주화 운동의 토대 위에 선 민주주의의 일부라는 인식이다. 셋은 대안 부재론이다. 보수세력 말고 이 사회와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다른 세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다. 그런데 최근 이 세 가지가 다 무너지고 있다. 70년 성공 신화는 사회 양극화, 빈부격차 심화, 불평등 사회가 말해주듯 극복해야 할 과거로 부상하고 있다. 광주 5.18 기념식 때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로 드러났듯이 박대통령을 비롯한 보수세력 상당수는 5.18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보수 세력이 진정 민주주의의 일부인지 의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대안부재론은 야당의 총선 승리 이후 힘을 잃고 있다.

■보수 위기 대처법

이런 상황은 보수 헤게모니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제 권력과 이권을 독점할 수 있다는 전망을 잃어가고 있다. 이 때문인지 박대통령과 새누리당, 친박과 비박계가 하나로 똘똘 뭉쳐 자기들 앞에 닥친 난관을 돌파할 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때 선택 가능한 방법을 단순화 하면 두 가지다. 이런 상태로 기득권을 서서히 잃어가다 자멸하거나,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는 것이다. 과거 보수세력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도 이와 같은 양자 택일의 기로에 선 적이 있다. 바로 민주당 정권이 10년간 지속될 때였다. 연거푸 두 번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보수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했고, 결국 집권에 성공했다. 뉴라이트 운동은 낡은 보수를 버리고 새로운 보수로 거듭난다는 보수 혁신 운동이었고, 이에 편승한 한나라당은 신 보수의 깃발을 내세워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뉴 라이트도, 새누리당도 모두 도로 낡은 보수로 돌아갔고, 바로 그 때문에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보수는 뉴 라이트 운동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보수 혁신의 깃발을 올릴만 한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것 같다. 왜 그럴까. 그 때와 다른 것이 세 가지이다. 절박감, 새로운 가치, 유력 대선 주자가 없는 것이다.

과거 보수세력은 야당 10년을 하면서 양 손에서 권력을 다 놓쳤다. 그래서 절박했다. 그렇게 절박한 만큼 새로운 가치, 이론을 내세웠다. 2002년 대선 패배 후 보수세력이 자유주의 세례를 받은 보수로,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선 보수, 민주화된 보수로 거듭나자며 새로운 보수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일찌감치 레닌은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 없다”고 했다. 행동에 앞서 그 행동의 지침이 될 이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새누리당에게는 이게 없다. 새로운 가치, 이론 없이 오직 완고한 기득권 수호 의지만 넘쳐나고 있다. 대표적이 예가 바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 테러방지법이다. 위험한 국가주의로 내달리며 신 유신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게다가 양 손에 쥔 것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 강력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게 총선 이후 어느 정도 흔들리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한 손에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이다. 가진 것 없어 절박했던 그 때와 달리 아직 손에 쥔 것이 있는 현재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과거 유력한 지도자가 있었지만, 이제 그런 지도자도 없다. 박근혜 정권과 함께 몰락했다.

■“당신들은 선거에 졌다고!”

그런 현실을 감안한다 해도 친박세력의 최근 행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들이 원하는 원내대표를 내세우고,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비대위 마치면 당권도 차지하려고 한다. 대통령은 총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청와대 정무수석을 유임시키고 총선에 별 역할도 못한 비서실장을 내보냈다. 5.18 기념식 때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여야 협력의 계기라고 하는데도 무시하고 일방 통행했다.

혹시 20대 총선에서 승리한 것으로 잘 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민심을 받들라고 하는 당내 목소리가 나올라치면 “나갈 테면 나가라” 하며 더 큰 소리 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괴롭겠지만 그렇다고 피하면 안 된다. 누군가 말해줘야 할 것 같다. “당신네들은 선거에서 졌어!”

■박근혜 정권의 5.18 인식에 비친 전두환 얼굴

집권세력의 5.18 인식을 보자. 5.18 기념식 때 이런 현수막을 식장에 걸렸다. ‘호국정신으로 튼튼한 안보, 하나 된 대한민국’ ‘5.18 정신으로 국민화합 꽃피우자.’ 광주 항쟁이 무엇인가? 군사정권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을 학살한 것에 대해 시민들이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건 한마디로 독재 대 민주, 독재 대 반독재, 반민주 대 민주의 대립이었다. 여기에서 중간은 없다. 그런데도 광주 항쟁 때 군사정권의 탄압 논리는 안보였다. 국가 안보를 위해 진입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호국정신을 내세웠다. 호국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다. 시민들은 외부 침략세력이라는 잠재적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구호를 차마 내걸지는 못했을 것이다. 광주의 교훈이 튼튼한 안보라는 것 역시 전두환 군사정권이 지닌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황교안 국무총리(앞줄 왼쪽 세번째)는 입을 꾸욱 다물고 부르지 않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황교안 국무총리(앞줄 왼쪽 세번째)는 입을 꾸욱 다물고 부르지 않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국민화합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국민화합은 국민 분열을 전제로 한다. 국민 분열은 어떤 하나의 가치, 의견, 목표를 둘러싸고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갈린 의견은 어느 것이 절대로 옳고 절대로 틀린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들의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이 차이를 어떻게 조정하고 타협하느냐이다. 그런데 광주 항쟁에서 국민화합을 꽃피워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광주 항쟁이 국민들 사이의 다툼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전두환 신 군부와 민주주의를 염원한 시민의 대립이다. 여기서 국민화합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려면 전두환이 시민들을 좀 더 부드럽게 대하고 시민들은 전두환에 대해 맞서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전두환은 화해의 대상이 아니라 거부의 대상이었다. 당시 광주 항쟁은 신군부의 쿠데타 때문에 발발한 것이었지, 국민들 사이 갈등이 있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혹시 정부가 전두환과 화해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면, 이거야 말로 36년만의 전두환 복권이 아닐 수 없다.

■함께 36년전으로 돌아간 남북

마침 북한에서도 36년만의 노동당 대회가 열렸다. 광주학살 5개월 뒤 북한은 노동당 대회를 개최했으니 남북이 광주 민주화 운동 36년, 노동당 대회 36년을 함께 맞게 된 것이다. 북한의 이번 7차 당대회는 세계적인 격변을 겪은 36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80년 6차 당대회에서 진전이 없는 퇴행적 대회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경제계획을 세우지도 못하고 핵과 낡은 이념만 되풀이 하다 끝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남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박근혜 정권 역시 36년 전의 시간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보수=비민주주의 아니다

보수라는 것이 비민주주의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반(半)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보수도 민주적 기본 질서를 지키면서 정치하고 통치를 해야 한다. 민주적 규범을 따르면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뉴라이트 운동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 왜 뉴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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